Sunday, January 22, 2012

성경에 나타난 경제원리

                                                    성경에 나타난 경제원리



1. 성경에 나타난 '경제(오이코노미아: οiκονομία)'의 의미 
경제원론 교과서에 보면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자원의 희소성(scarcity)을 전제하고 있는 경제학은 '사람의 필요와 소용에 따라, 희소한 자원을 최적으로(optimal) 이용하기 위하여, 행하는 선택 (choice)과 행동(action)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비자(consumer)의 소비경제행위와 생 산자(producer)의 생산경제행위,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는 시장에서의 시장경제행위를 다루는 분야를 미시경제학 (microeconomics) 이라 하고, 국가차원에서 재정정책(fiscal policy)과 금융정책 (monetary policy)을 적절히 운용하여 물가와 임금, 고용, 이자율 등의 조정을 다루는 분야를 거시경제학 (macroeconomics)이라고 부른다.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국제무역(international trade)도 이 거시경제학에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경제행위는 미시경제학이나 거시경제학에서와 같이 재화(財貨)와 직접·간접적 으로 연관이 있는 행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광의(廣義)의 경제행위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보는 대로 한 나라를 움직이고 백성을 다스리고 구제(救濟)하는 전반적인 통치·행정행위를 의미한다.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도 말하자면 경제행위의 전반이라 할 수 있다. 수신(修身)은 개인의 경제원리 (individual economic principle)요, 제가(齊家)는 가정의 경제원리 (domestic economic principle)요, 치국(治國)은 국가의 경제원리 (nation's economic principle)요, 평천하(平天下)는 세계의 경제원리 (global economic principle)를 제시하여주는 것이다.

경제(economy)란 말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
οiκονομία)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에서 오이코노미아의 일차적인 의미는 '가계 혹은 가사의 경영,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경영, 관리 및 감독, 혹은 경영자, 감독자, 청지기(οiκονόμος)의 직무' 를 의미한다. 누가복음 16:2-4에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의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청지기의 사무(16:4), 청지기의 직분(16:3, 4)이 경제(經濟)란 말에 해당한다. 경제 를 맡은 청지기는 현대적 표현으로 하면 (전문(專門)) 경제인(經濟人) 혹은 경영인(經營人)이라고 할 수 있 다.
둘째로, 오이코노미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증거의 사명 혹은 복음증거를 위한 청지기, 관리자(管理者)의 직분(職分)'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9장 17절에서 바울은 "내가 내 임의로 이것(=복음을 전함)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職分)을 맡았노라"고 했는데, 여기서 직분은 '성경적 경제인(=복음증거자) 의 사명'을 뜻한다.
셋째로, 성경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경륜'이란 뜻을 포함한다. 곧, 하나님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할 것이다. 에베소서 1장 9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 (plan, RSV)을 위하여"; 3장 2절 에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stewardship, RSV)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장 9절에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plan, RSV)이 어떠한 것을"에서 경륜(經綸)은 오이코노미아 의 번역인 데, '하나님의 경제' 혹은 영어성경이 plan으로 번역했듯이 '하나님의 경제 (혹은 경세제민) 계획'을 뜻한다.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경륜(office, RSV)을 따라"고 함과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 (training, RSV)을 이룸보다"라고 함도 하나님의 인간구원(人間救援)이란 경세제민 (혹은 경제) 계획 또는 정책을 뜻한다.


2. 성경의 경제원리: 평균화 경제원리에 따른 공생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인간(소비자 혹은 생산자)의 경제원리는 극대화(maximization) 혹은 최적화(optimization)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효용(效用) 혹은 만족(滿足)을 극대화하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에게 만족의 척도는 흔히 돈의 많고 적음이다. 직장을 선택 할 때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다른 조건들은 대충 받아들인다. 또,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경영을 한다.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하여 때로는 경쟁사의 상품을 비방하고, 또 부정한 방법으로 판매이익을 늘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제원리는 극대화(極大化)가 아닌 평균화(平均化=balanced out 혹은 averaged out)이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에 게 만나를 내려 주시고 그들에게 이를 거두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들판에서 만나를 거둘 때 어떤 이는 많이 거두고 또 어떤 이는 적게 거두었으나, 출애굽기 16장 18절에 보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금하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의 이 '평균(平均)의 경제원리'을 설명한다. 고린도후서 8장 12-14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함을 보충함은 저희의 유여한 것으 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J. Calvin)도 평균의 경제원리에 대해 서 말할 때, "부한 자는 그들의 물질적 부를 가난 한 자와 나누어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가난한 자는 영적 부를 부자와 나누어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다. 따라서 부자는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나누어주는 일군(δι
ακονος: minister 혹은 servant)이요, 가난한 자는 영의 풍요로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종(대리자=vicar)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될 때, 그 사회는 물질적, 영적인 부가 평균화되고 모두가 형편이 더 좋아지는(better off) 사회가 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공유생활 (common life: Commonism=공생주의)을 하였다. 사도행전 2장 44절 이하에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 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한 몸 의 지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생활을 한 것이다. 초대교회의 공생주의(Commonism)는 평균화 경제원리에 따른 생활이다. 자본주의(Capitalism)는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벌어서 자기가 번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하는데, 한 가 지 단점은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공산주의(Communism)는 각자의 능력에 상관없이 똑같이 벌어 똑같이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상적인 것 같지만 능력이 많은 사람의 일할 의욕을 저하시켜 생산성(productivity)을 떨어뜨리고 따라서 사회 전체가 빈곤(貧困)하게 된다. 그러나, 평균화의 경제원리가 실현되는 사회는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욕 을 제한하거나 무시하는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 교회를 중심으 로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보완하게 한다. 평균화 경제원리의 실행은 정부나 기타 권력기관의 강제적 혹은 물리적인 법집행으로 가능한 것 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린도후서 8:1-5: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 공생주의(Commonism)는 자기 능력껏 일하여 일한만큼 벌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고 통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균화 경제원리 에 따른 삶이라 할 것이다.

3. 하나님의 경제원리를 실천하는 교회상
하나님의 경제계획 (=경륜)은 인간구원(人間救援)이라고 했다. 이 시대상황(時代狀況) 가운데 존재하는 교회의 경제계획도 인간구원이다. 영적인 구원이 물론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경제적 빈곤(貧困)으로 신음(呻吟)하고 자살(自殺)로까지 치닫는 이웃을 외면(外面)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양의 반열(班列)에 선 사람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태 25:35-36)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교회가 모으기에 열심이었다면 이제는 '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재벌(敎會財閥)로서 발돋음하고 대형교회 목사라는 특권의식을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보이 신 그 모범을 따르는 진정한 주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균(平均)의 경제원리'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첫째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렇다. 다섯 개의 떡덩이와 두 마리의 물고기는 한 사람의 점심식사 분량이지만 이를 떼서 나눌 때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남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선포하는 교회는 인간 의 얕은 계산방법을 버리고 주님의 경제원리에 따라 경세제민(經世濟民)에 앞장서야 한다. 

둘째는, 예수님의 생애(生 涯) 자체가 평균케 하시기 위함 이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말씀한다.  대형교회는 '주님의 이름'이라는 미명(美名)하에 교회의 부(富)를 자신의 몸체 불리기에 무익(無益)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원래 부요(富饒)하신 분이시나 가난하게 되신 주님의 모범(模 範)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 위에 교회는 크리스천의 경제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부정한 이익을 취함이 아니요, 지나친 낭비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요, 근면하고 분수에 맞는 적절한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허례허식의 삶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건전하고 모두의 형편이 좋아지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혜롭 고 선한 청지기(=경제인 혹은 경영인)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시간 역시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므로 부지런히 내게 맡기신 달란트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경영(經營)하는 삶을 살도록 교회가 앞장서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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