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7, 2012

"노자의 세 가지 종류의 사람" (고전 2:14-3:3; 마태 13:3-23)

"노자의 세 가지 종류의 사람" (고전 2:14-3:3, 마태 13:3-23)


  성경구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 (고전 2:14)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덕경(德經)」제 41장):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행하고
     (上士聞道, 勤而行之)
     평범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간수하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듯하기도 하며
     (中士聞道, 若存若亡)
       어리석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으니 비웃지 않으면 도가 되기에 부족하다.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不足以爲道)
     (When the best student hears about the way, he practices it assiduously;
        When the average student hears about the way, it seems to him one moment there and
       gone the next;
      When the worst student hears about the way, he laughs out. If he did not laugh,
       it would be unworthy of being the way.)

노자의 도를 듣는 세 종류의 사람의 구분은 예수님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마태 13장)에서 세 종류의 밭의 사람과 바울의 세 종류의 영적 상태의 사람(고전 2:14-3:3)의 구분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노자의 ‘어리석은 사람’(下士)은 예수님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길가’의 사람이요, 바울의 예에 있어서는 ‘육에 속한 사람’(고전 2:14)입니다. ‘길가’의 사람은 천국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로 듣기를 거부하고, 혹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닫힌 마음으로 들으며 그 속에서 이를 비웃거나 가볍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는다”(마태 13:19)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노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리석은 사람이 비웃지 않는 천국 말씀’은 ‘천국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한다”(고전 2:14)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육에 속한 사람’을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는 “멸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자의 평범한 사람’(中士)은 예수님의 돌밭’이나 가시 떨기’의 사람이요, 바울에게는 육신에 속한 사람’(고전 3:1)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도를 듣고 긴가 민가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 사람은 말씀을 들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마태 13:21, 돌밭’의 사람)이거나 혹은 “세상의 염려나 재리의 유혹에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마태 13:22, 가 시 떨기’의 사람)입니다. 바울의 ‘육신의 사람’은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자라지 않는 사람이요, 시기와 분쟁 등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하기에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입니다(고전 3:1-3). 갈라디아서의 예로 말하자면, 이러한 사람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칠”(갈 3:3)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 리가 가시나무가 아니라 무화과나무가 되고 찔레나무가 아니라 포도나무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말림을 당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가지는 베임을 당함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6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자의 뛰어난 사람’(上士)은 도를 듣고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좋은 땅’의 사람이요, 바울의 ‘신령한 사람’ 곧 ‘성령에 속한 사람’(고전 2:15)입니다. ‘좋은 땅의 사람’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신령한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자요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노자의 세 가지 종류의 사람에 관한 구분은 비단 도(道)를 수학(修學)하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사업을 하는 사람, 가정을 돌보는 사람 등 모든 분야, 모든 사물과 사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上士)이 반드시 다른 분야에서도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사업이나 학문 등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교회생활을 하나 ‘십자가의 도’를 깨달음에는 둔하고 따라서 성령의 열매맺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목회자로서, 저는 여러분이 ‘십자가의 도(道)’(고전 1:18)를 깨닫고 따라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에 뛰어난 신령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성령의 많은 열매를 맺는 신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사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들을 귀, 볼 눈,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들을 귀, 볼 눈,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부정적으로 듣고자 함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듣고자 함이 필요하고, 발견하지 못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볼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보고자 할 것입니다.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위에 자신의 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음을 솔직하게 시인함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기 과신(過信)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임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그리스도의 영, 성령)가 그의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를 맺지 못함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아니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께서 그의 안에서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출석함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그를 이끌기에(요한 6:44 참고) 그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지만,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성령의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함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되, 머리로뿐 아니라 가슴과 마음으로 영접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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