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3, 2016

“그리스도의 은혜인 은사” (에베소서 4:7-12)


“그리스도의 은혜인 은사” (에베소서 4:7-12)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
표적을 구하는 이 세대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주옥같은 설교를 듣고, 5병 2어의 기적을 보고, 병고침의 능력을 보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적을 보았지만 그들이 그것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주님을 만나면, 내가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 하나님을 정말 잘 믿을 수 있으리라’ 말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신앙을 일시적으로는 뜨겁게 하고 일시적으로는 믿게 할지언정 지속시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보며 가까이서 좇은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아무도 그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갈릴리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실 때 그의 부활을 보면서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부활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사명을 당부하시면서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500명 가운데 380명을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흩어졌으며 오직 120명만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씁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한 때 남자 장정만 5,000명인 그들이 예수님께서 머리되신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전혀 기도에 힘쓴 결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충만해진 120명이 오늘날 교회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초대교회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생활은 우리에게 참으로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남자 장정의 수가 60만이었습니다. 해서 전체 이스라엘의 수는 추측컨대 200만에서 300만 사이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대에게 쫓기며 홍해에 까지 이른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로 지팡이를 들어 손을 바다 위로 내밀게 하시매(출 14:16, 21) 바다가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오묘하신 뜻이 있습니다. 구름기둥은 광야 길을 행진하는 까닭에 낮의 작열(灼熱)하는 태양의 뜨거움을 가려주어 서늘함을 공급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밤에 사막의 혹독한 추위를 막아주기 위하여 훈훈한 열기를 공급하여 주시기 위하여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믿음을 위해서 더 증거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목마르다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며, 배고프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발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무람 없이 하늘로서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왜 매일 맛없는 만나만 주느냐고 또 불평하는 그들을 위하여 메추라기를 공급하십니다.
애굽을 빠져나오는 그들이 여유분의 옷과 신발을 변변히 준비하여 오지 못함을 아시기에 40년동안 그들의 옷과 신발이 닳지않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퍼부을 때에는 그들을 참으셨습니다. 불평하는 그들을 위하여 모세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명하실 때, 모세가 분을 참지 못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오히려 그를 책망하시며 그로 인하여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은 책망치 않으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들의 불신앙은 징벌하십니다.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믿음없는 보고를 들으시고 그들을 40년 동안 광야를 유리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게 대항하는 자칭 지도자들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 무리들의 반역을 묵과하지 않으시고 땅을 갈라지게 하여 그들을 삼키게 하십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뜨겁게 기도하던 120명이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신약 교회의 모형이라고 하면, 출애굽하여 40년을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은 구약에 등장하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200만이 넘는 이 구약교회는 하나님께서 밤과 낮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으나 하나님이 없는 자들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와같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른 자가 적습니다. 출애굽한 60만의 남자 장정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숫자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이루어진 신약 교회는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전혀 기도에 힘 쓸 때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이제까지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역사와 그리스도인 되게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40년 광야생활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며 옷과 신발이 닳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이 그 권능과 보호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지만 믿음이 온전한 자는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믿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환경의 여하에 따라 신앙이 많이 좌우됩니다.
주위의 환경이 좋으면 나의 믿음도 좋은 것같다가, 주위의 환경이 나빠지면 나의 믿음도 따라서 나빠집니다.
이러한 환경에 지배를 받는 신앙생활이 일생을 가면 이 사람은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입니다.
기쁘고 평안할 때도 감사와 찬양, 슬프고 괴로울 때도 마음 중심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이나 병이나 환난이나 곤고가 나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환경이 나의 믿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환경을 이깁니다(control).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바라보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기도 중에 의지하고, 순종하고, 고백하고, 증거하는 삶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생활 가운데 경건의 연습과 체험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목회자의 믿음과 평신도의 믿음이 주님 중심의 신앙의 삶으로 점점 성장할 때, 그러한 목회자와 성도가 구성원이 되는 교회는 믿음이 성장하고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2
4장 1-6절에서 한 성령과 한 주님과 한 하나님 안에서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교회가 하나임을 역설한 바울은 오늘 본문 7-12절에서 이러한 교회가 조화와 온전한 성장과 세우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교회의 지체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에게 주어진 각기 다른 은사와 직임을 잘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7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 
 
7절은 12절로 이어집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은혜의 선물을 주셨는데 이는 우리로 선물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고 자랑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첫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하시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한 봉사의 일을 잘 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며, 셋째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바로 세워 아름다운 모습의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라고 했습니다.
‘선물의 분량대로’라고 했는데, 로마서 12장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라고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5절에서는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시기 위해서 값없는 선물--해서 은혜(恩惠)의 선물이라고도 부르는 은사(恩賜)를 내려주시는데, 그냥 막연하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재능대로, 믿음의 분량대로 주십니다.우리의 믿음이 자라면 해서 더욱 더 큰 은사가 추가적으로 주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믿음 없음은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기 보다 큰 은사의 분량을 부러워하며 시기하며 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활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며 비방합니다.
심한 경우, 이러한 사람은 그리스도 몸을 구성하는 건전(健全)한 지체가 아니라, 지체인 것 같으나 몸을 죽게하는 악성 종양(혹)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은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무익한 종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8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 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우실 때, 전에는 사단에게 사로잡힌 바 되었던 자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의 일을 감당케 하시기 위하여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비유들 중에서 십자가에 고난당하기 위해 붙잡히시던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는 참으로 그 의미하는 바가 크며 듣는 사람의 심금(心琴)을 울립니다.
마태 25장 1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비유의 하나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로 시작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의 곁을 잠시 떠나 고난받으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실 것을 아시기에 마지막 밤에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임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이를 잘 감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예할 것이요, 게으름으로 잘 감당하지 않는 사람은 주인을 섬기는 하인이라고 하나 그 게으름으로 인하여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치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심입니다.

9-10절: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하면, 우리 인간을 사랑하사 구속하여 주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땅으로 내려오셨던 분이십니다. 그가 이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다시 하늘 위의 하늘로 올리우심은 1장 23절에 이미 증거한 대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모든 하늘 위” 혹은 “하늘 위에 하늘”로 표현되는 예수님께서 올리우신 곳을 2세기 ‘영지주의자들’ (Gnostics)은 플레로마(Pleroma)라고 불렀습니다. 곧, ‘충만의 하늘’이란 뜻입니다.
이  플레로마라고도 불리우는 ‘모든 하늘 위’의 그리스도는 어떤 한 가지에서도 부족함이 없으신 온전하시고 풍부하신 그리스도시며 종국에 그가 사랑하시는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11절에는 7절에 말씀한 값없는 은혜의 선물인 성령의 은사라고도 불리우며 혹은 은사에 따른 직임이라고도 불리우는 교회 안에서의 직분들이 열거되어있습니다.

11-12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1절에 열거된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전하는 자나, 목사와 교사는 성령의 값없는 선물인 은사의 주님을 위한 활용의 예들입니다. 내가 사도가 아니라 해서, 선지자가 아니라 해서, 복음전하는 자가 아니라 해서, 목사와 교사가 아니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위해서 나의 할 일이 없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8-31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또 로마서 12장 6-8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권면하고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열거된 은사나 열거되지 않은 은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은사가 주어졌는데, 이 은사는 활용되어져야 할 은사이며 이 은사의 활용은 성도로 그리스도인다운 온전함을 갖게 하며, 교회의 봉사직분을 감당케 하며, 해서 교회를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아름다움 교회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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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성장을 원하십니까? 주님을 만나시고 주님의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주님을 의지하고, 고백하고, 증거하고, 찬양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고자 연습함이 우리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게서 그리스도의 값없는 선물인 은혜로 말미암은 은사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발견하고 활용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주님의 칭찬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지체의 연합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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