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에베소서 4:13-16)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란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凡事)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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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탄이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열 개의 병을 보이면서 청년에게 제안합니다: “여기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있고 한 개의 병에만 극약이 들어있는데 열 개 중에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마시면 엄청난 돈을 네게 주겠다.” 청년은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리 돈이 좋지만 하나 밖에 없는 생명과 바꿀 수는 없지” 하며 그의 솔깃한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계속 말합니다: “극약은 열 개 중에 하나야. 겨우 하나일 뿐이야. 잘 생각해 보라구.”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에 청년은 속으로 그 돈이 그에게 가져다줄 평안함과 쾌락을 가름하여 봅니다: “그래 딱 한 번만 하는거다. 이번 한 번으로 난 평생 고생 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지.”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열 개의 병 중에 하나를 골라 조심스럽게 마십니다.“ 이내 청년은 환호성을 지르며 말합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자칫하면 죽을 뻔 했어. 자 어서 네가 약속한 돈을 내라. 그리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라.“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는 “다음 번에 언제라도 남은 아홉 병 중에 하나를 마시겠다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엄청난 공돈이 생긴 청년은 흥청망청 방탕의 세월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그가 전에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말한 사탄에게로 제 발로 찾아가서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여 아홉 개의 병중에 하나를 골라 마시고 사단이 유쾌히 웃으며 아낌없이 내어주는 돈을 받아쥐고는 또 똑같은 방탕의 삶을 반복합니다. 그 다음에 또 그 다음에도 이 사람은 스스로 사탄을 찾아가서 위험부담의 확율이 점점높아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을 골라 마시고 돈을 받아오고 또 방탕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어느덧 건장하고 꿈이 많고 할 일이 많던 청년은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술과 향락의 세월로 얼굴과 손이 다 떨립니다. 사탄을 찾아간 그 사람 앞에 놓인 병이 이제는 단 두 개 밖에 없습니다.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두 병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두려운 마음으로 마십니다. “아! 내가 이겼어. 나는 끝까지 살아남고야 말았다. 내놔라, 돈! 이것으로 끝이다.”
이때 사단은 빙긋이 웃으며 나머지 한 병을 들어 마셨습니다. “자 이래도 네가 이겼느냐? 극약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라는 나의 극약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지. 너는 천하보다 귀한 인생을 돈이라는 종이에 팔고 말았어.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너는 세상에 더 가치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오직 돈만 알고 돈으로 인하여 너의 일생을 망가뜨린 나의 노예란 말이다.”
2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 온전하여 지는 것은 우리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육의 몸으로 우리에게 닥아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고 아는 일로서 가능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알 수 있습니까?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고 이해하고자 하고, 그분이 명하신 대로의 삶을 살아나가면서 가능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한 사람에 대해서 안다 또는 믿는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아는 사람은 그의 껍데기, 걸치고 있는 외형이라는 옷인데, 그의 내면을 안다, 믿는다고 말합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비추인 예수님은 ‘병고치는 예수님’이요, 어떤 사람의 눈에 비추인 ‘쾌락을 즐기는 예수님’이요, 또 어떤 사람의 눈에 비추인 예수님은 세상의 저급한 자 “창기와 세리, 무식한 자의 친구인 예수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일면만이 예수님의 참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되시며 그분 자신이 하나님되신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온전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해서, 우리의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신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땅의 일로 인하여 시험받고 너무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믿음의 분량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믿음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성숙하고 장성한 것일 때 우리는 미혹되지 않을 것이나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을 때 우리는 믿음이 미혹(迷惑)되거나 요동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바르지 못하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잘못되어 있음 조차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제대로 된 신앙인인줄 알고 있습니다.
많은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을 갖고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요한복음 9장 41절에서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라고 함은 순전한 어린아이와 같은(child-like) 마음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childish) 자기만 알고 욕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지 못하여 광명한 천사를 가장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신의 모습이 나의 정과 욕심을 채워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관심이 이 세상에만 머물고있는 한에 있는 한에 있어서는,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돈과 명예와 권세와 이 세상에서의 축복에만 머물러있는 한에 있어서는 성경 속에서 부분 부분 내가 발견했다고 하는 그 하나님도 실은 참 하나님이 아니요 나의 욕심으로 재포장된 가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분명히 참 하나님이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그분조차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작은 금송아지로 포장하여놓고 그 금송아지를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뿐아니라 그로부터 2-3000년의 세월이 흐르는동안 이러한 잘못은 계속 반복되어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죽음 이후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이 그랬고 여로보암의 악을 좇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랬고 현대의 교회들에서 그러한 잘못된 믿음과 행위를 봅니다.
나의 믿음이 왜 미혹되고 왜 요동합니까? 나를 구원하시며 나에게 영원한 소망과 기쁨을 주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왜 나의 마음이 편치 않고 여전히 절망 속을 방황합니까?
그것은 내가 부리기를 원하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나의 욕심을 통하여 재창조된 나의 작은 신--하나님이 내가 부리는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5-16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3절에 이어 15-16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그를 아는 지식에 더하여 그의 사랑 안에서 그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만을 위하고 자기의 욕망충족에만 골몰할 때 우리는 우리와 친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닥아와 우리를 미혹하는 사탄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고 우리의 요동할 것이지만 남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고자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참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라 하셨는데, 머리는 각 지체에게 행하여야 할 일을 알리는 사령탑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의 지체인 우리에게 머리되신 주님께서 명하실 때에 우리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므로 그분께 붙어있는 지체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체인 우리가 인간의 과다한 욕심을 낼 때 내가 구성하는 교회라고 하는 몸은 기형의 모습이 되거나 군더더기의 살이 붙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의 지체로 삼으실 때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혹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합당한 재능의 분량에 따라 은사를 주시고 잘 경영하라 명하셨는데 우리가 이 일을 잘 감당할 때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몸능 잘 자라게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아름답게 세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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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믿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바로 알고 온전히 그의 사랑 가운데 거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성하는 교회도 사람의 궤술과 유혹에 빠져 넘어지지 않고 요동하지 않으며 잘 성장할 것이며 아름답게 세워져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바로 알고, 바로 사랑 가운데 거함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세상 정욕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우리의 작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대하고 크신 그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번민과 약함을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그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가운데 사랑으로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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