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4, 2015

“하나님의 수확 법칙” (고린도후서 9:6-15)

“하나님의 수확 법칙” (고린도후서 9:6-15)
          

   9:6    이것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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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 채프맨(Wilbur Chappman)이라고 하는 사람이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채프맨이 무디를 찾아왔습니다. “무디 선생님, 저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무디는 질문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채프맨이 대답합니다. “저는 믿기는 믿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무디는 그에게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을 읽어보라고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채프맨에게 믿느냐고 물어보니까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무디는 그에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 채프만은 “글쎄요?!”라고 자신없게 말합니다. 무디는 그에게 요한복음 5장 24절의 말씀을 한번 더 읽으라고 말합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당신은 이 말씀을 믿습니까?” 채프만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제가 믿는다고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당신에게 영생이 있습니까?”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이때, 무디가 소리칩니다: “당신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합니까?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그의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며, 채프만이 반문합니다: “그러면, 제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하는 무디의 말에 채프만은 자신이 여지껏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인 선교사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이 중국선교를 위해 배를 탔을 때 미국인 선장이 그에게 질문합니다. “모리슨씨, 당신이 정말 중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리슨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리슨이 죽을 당시 그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중국인 개신교 신자의 수는 12명에 불과했는데, 1세기가 지난 후에는 약 3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피와 땀으로 씨를 뿌릴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많고 적음은 우리의 드리는 절대 액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믿음의 마음의 크기입니다.

아프리카 수단(Sudan)의 쉴룩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인색한 사람을 가리켜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고 너그러운 사람을 가리켜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인색한 사람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대로 그 마음속에 잔뜩 쌓아둔다고 생각하기에 그 (욕심의) 마음이 크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너그러운 사람은 가진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남에게 나눠주려고 하니 마음에 쌓아 두는 것이 적어서 마음이 작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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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에서 바울은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유대 지방은 대부분 사막의 기후이요 토양이 척박하여 씨를 뿌려도 땅에 파묻히기가 일쑤라고 합니다. 따라서 씨를 적게 뿌리면 전혀 수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넉넉히 넘치도록 뿌려야 흙에 파묻혀 싹을 못내는 씨를 감안하더라도 풍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가난한 자에게 재물을 나누어줌을 심는 일에 비유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말씀과 상통합니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일은 하늘을 향해서 동전을 던짐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땅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돕는 일을 감당할 때 이루어집니다(마태 25:31-46 참조). 지상에서 풍성한 것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것으로 하늘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누가복음 6장 43-4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나무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열매가 결정되어집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어떤 씨를 뿌렸느냐에 따라서, 어떤 묘목을 심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나무가 정해집니다.
풍성하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를 원할 때 우리는 좋은 나무의 씨(혹은 묘목)를 심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마태 25:14-30)에서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었던 종은 그 주인을 평가하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불성실한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데서 거두시고, 헤친(=곡식과 겨를 따로 모은) 가운데서 모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와 봉사의 풍성한 것으로 씨를 뿌릴 때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적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훼이도메노스”(φειδομένως)는 ‘인색하게’(sparingly)라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열’이 부한 사람의 ‘하나’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적게”란 절대적인 액수가 아니라 마음의 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기아이스”(εὐλογίαις)는 복되게(bountifully)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마음 중심의 풍요로운 것으로 즐겨 드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바울의 6절의 말씀을 풀이하면, “가난한 자에게 인색하게 나누어주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인색한 것으로 거두고, 가난한 자에게 복되게 나누어주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복된 것으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5절에서 “율로기아”(εὐλογία)--곧, 축복을 연보라고 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축복을 위해서 우리를 판단하시는 기준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리의 연보 드리는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시간을 드리거나, 재물을 드리거나, 마음을 드림에 억지로 하거나 인색함이 없어야 할 것은 그것들이 본래 우리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동안에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인 까닭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필요하다 하실 때 우리는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그것을 원래 주인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복되게, 마음에 정한 대로,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고, 이러한 사람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모든”(πάς, πάσα, πάν: all, every)이란 단어를 반복하여(한글성경: 4번, 헬라어 원어: 5번)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사람의 일상사 구석구석까지 풍성하게 미치며, 이로써 더욱더 하나님의 선한 일에 풍성한 것으로 드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9절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112편 9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며 이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는 자를 사랑하시는데 그들을 의로운 자로 세우시되 영원히 세우시고 그들을 영화롭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되 자원함으로, 마음에 정한 대로 풍성한 것으로 즐겨내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삶입니다. 이러한 자의 의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계산대로, 방식대로, 주장대로, 옛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겠습니까?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구제할 것을 준비하는 자에게 구제의 물질을 마련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한 양식도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되 씨와 양식을 풍성하게 하시며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에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또한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나누어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을 것을--즉,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줄 것을 더욱 풍성히 주시며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이러한 일로 인하여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봉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12절에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이 넘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 될 것이요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칭찬과 은혜가 또한 넘쳐날 것입니다.

나무는 손으로 만지고 쓰는 동안에는 조금씩 닳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를 아낀다고 그대로 두면 썩기 시작합니다. 소리가 잘나는 바이올린도 연주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벌레가 파먹고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달란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게으르고 무익(無益)할 뿐입니다.

13-14절에서 바울은 거듭 반복합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우리가 이와 같이 가난과 헐벗음에 처한 동포를 돕는 일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증거가 된다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이것이 말과 혀로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이요, 우리에게 복된 말씀을 주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러한 일을 감당한 우리를 향하여 사모함이 있게 되고 또 우리와 같은 선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하게 됩니다.

15절에서,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는 말씀으로 본장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을 주시고 마음을 주시고 기회를 주심에 감사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7-8절에서 바울은 섬기는 일과 구제하는 일과 긍휼을 베푸는 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신 귀한 은사(恩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고 여력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열심으로, 성실함으로,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무엇이든지 희귀한 것만을 갖고 싶어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맛이 기막히게 좋은 요리를 먹은 후 감탄합니다. “내가 이제껏 먹어본 요리 중에 이것이 제일이다. 이렇게 훌륭한 요리를 만든 사람은 세계 제일의 요리사임에 틀림없다. 많은 상을 주어야겠다.” 임금님은 요리사를 불러들였습니다. 요리사는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겸손해 합니다. “임금님, 칭찬해 주시니 대단히 기쁩니다만 이 요리는 제 기술이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만약 좋은 야채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해 주시려거든 좋은 야채를 많이 파는 채소장수를 칭찬해 주십시오.” 임금님은 그도 그렇다고 생각되어 채소장수를 불렀습니다. 임금님께로 불려간 채소장수는 많은 칭찬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임금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야채를 팔았을 뿐입니다. 정작 칭찬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야채를 키운 농사꾼이겠지요.” 이번에는 농사꾼이 불려갑니다. 농사꾼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임금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농사한 야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자 깜짝 놀랍니다. 그는 임금님의 칭찬에 대답합니다. “임금님, 저는 그저 손질만 했을 뿐이지요. 제가 땅을 갈아 씨를 심어도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저는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만들지 못하지요. 단지 저는 대대로 농사꾼이기에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니다. 감사의 인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요.”

3
하나님은 공짜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그의 자녀들에게도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수확법칙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적게(=인색하게) 심는 자는 적게(=인색하게) 거두고 많이(=복되게) 심는 자는 많이(=복되게)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많은 것으로, 마음에 정한 대로, 즐거이 심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심는 것은 우리 혼자만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나눔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수확하고 연보한 것을 교회 안과 주위에 흩어져 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사역을 감당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와 성도들을 더욱 풍성하신 은혜로 축복해 주십니다. 이로써 나눈 자도, 나눔을 받은 자도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많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마음 깊숙히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을 받고 은혜의 하나님께 모든 일에 모든 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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