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관용” (창세기 50:15-21)
1
중국의 어떤 왕이 저녁 만찬을 베풀고 신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왕후도 같이 참석하여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연회석 안에 있던 촛불이 다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평소에 왕후를 연모(戀慕)하던 신하 하나가 왕후의 손목을 덥석 잡았습니다.
왕후는 놀라서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지르고 그 사람의 갓끈을 쥐어뜯었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내 손목을 잡은 고약한 놈의 갓끈을 잡아뜯었으니 갓끈 떨어진 자가 내 손목을 잡은 놈이오.”
이 때 왕은 말하기를, “불은 조금 있다가 켜라.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갓끈을 떼라.”
왕의 말에 모든 신하들은 다 갓끈을 떼었습니다.
왕후의 손목을 잡았던 신하는 왕의 관대한 마음에 감동하여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라는 사실은 자주 인용되는 예입니다. 어느 날 그가 소크라테스를 향하여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내가 뭐라고 해도 상대하지 않고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점점 화가 나서 물통에 물을 담아 와 그대로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천둥이 친 다음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오게 마련이지.”
한번은 친구가 소크라테스에게 묻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저렇게 잔소리가 심하고 수다스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살고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사나운 말을 타고 연습하면 나중에 어떤 말을 타도 곤란해지지 않지. 아내 같은 사람을 다룰 수 있다면 어떤 사람도 다룰 수 있지 않겠나?”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한 괴한이 나타나서 곤봉으로 소크라테스를 때렸습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동행했던 친구가 격분하여 꼭 복수를 해야겠다고 나섭니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당나귀에게 채였다고 당나귀한테 복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는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로 일하였습니다. 그가 아직 풋내기 변호사 시절에 어떤 한 사건을 맡게 되었는데, 그 사건을 당시 일리노이에서 매우 유명한 변호사로 이름을 얻고 있던 스텐턴(E. M. Stanton, 1814-1869)이라고 하는 변호사와 함께 맡게 되었습니다. 스텐턴은 그와 함께 사건을 담당할 변호사가 링컨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법정에서 “저 따위 시골 변호사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한단 말이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소.”라고 소리지른 후 나가버렸습니다. 링컨은 그저 자리에 앉아서 웃을 뿐이었습니다.
후에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가 남북전쟁을 이끄는 동안 매우 혼란스럽고 긴박한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 국방장관이 물러나 그 자리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후임으로 누가 적당한지 많은 사람들이 설왕설래하였습니다.
이때 링컨은 “스텐톤씨를 임명할 것이오.”라고 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링컨의 각료들이 모두 반대하고 나섭니다.
“대통령 각하, 지난 날 스텐톤이 한 행동을 잊으셨습니까? 그 건방지고 모욕적인 일을 말입니다.”
링컨이 대답합니다:
“나를 백 번 무시하면 어떻소? 그게 무슨 상관이오? 그 사람이 장관이 되어 훌륭히 자기 일을 해주기만 한다면 아무 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소?”
스텐톤이 장관이 된 다음에도 그는 링컨을 반대하고 무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이 스텐톤 장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다 읽고 난 다음에 스텐톤은 “링컨은 참으로 바보같은 사람이야!”라고 매우 격렬하고 노골적인 욕을 하면서 편지를 찢어버립니다.
장관의 이런 행동과 말을 전해들은 링컨은 화를 내기는커녕 잠시 생각하더니 “아마도 스텐톤 장관의 말이 옳을지도 모릅니다.”고 하면서 웃었다고 합니다.
2
15절: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그를 다른 형제들보다 사랑하므로 형들이 그를 미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많은 꿈을 주셨는데 그 꿈들을 형들에게 말할 때 또 형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인 즉,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등입니다.
형들이 들에서 아비 야곱의 양 떼를 치고 있을 때,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갑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오매 형제들이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큰형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라고 권고함으로 구덩이에 던짐이 됩니다.
형들이 음식을 먹고 있는데 마침 이스마엘 자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매 넷째 형 유다가 요셉을 살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하고 그의 제안대로 은 이십 개에 그를 상인들에게 팔고 그 상인들은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아들들과 함께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던 애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십칠 년 동안 산 후 147세로(창 47:28) 세상을 떠났을 때, 요셉의 형들은 불안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아 있을 때에는 요셉이 아버지 때문에 우리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는데,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가 행한 모든 악에 대하여 복수하지 않으려나 불안합니다.
16-17절: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말이라고 요셉에게 말을 전합니다. 야곱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아니면 요셉의 복수가 두려워서 형들이 지어낸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7절에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고 말합니다.
애굽의 국무총리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갖고 있는 요셉 앞에 그들의 고양이 앞에 쥐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요셉의 한 마디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인생들입니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관용의 마음으로 형들의 잘못을 이미 용서하였는데 그 앞에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형들이 보기가 안 되어서 울었을 것입니다.
18절: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형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요셉의 앞에 엎드려 그들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동생인 요셉에게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19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 마소서” 말합니다.
내가 이미 형들을 용서하였는데, 그리고 만일 벌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 것을 분명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Vengeance is mine, 신 32:35; 롬 12:18; 히 10: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형들은 요셉의 목숨을 헤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갈 때 애굽에서 종으로 살다가 죽든지 그저 종으로 목숨을 보존하면 족한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국무총리로 높이시며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시키셨습니다. 요셉은 그가 형들과 형들의 자녀들에게 평안한 삶을 줄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요셉의 일생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그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 흠 없고 티 없는 삶을 산 것같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받으시는 독생자(獨生子)로서 흠 없고 티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핍박받음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핍박받음을 예표합니다.
형들 가운데 유다가 요셉을 다른 형제들이 죽이고자 함에서 살리고자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전 20냥에 넘겨준 것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유다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대제사장들과 관속들에게 은전 30냥에 넘겨줍니다.
그를 죽이고자 하며 그를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넘겨준 형들을 요셉이 관용으로 용서한 것 같이, 예수님은 그를 죽이고자 빌라도와 로마관원들에게 넘겨준 그의 동족 유대인들을 관용으로 용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저희를”이란 대명사 안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그에게 잘못을 저지른 그의 형들을 용서한 것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과거 죄와 현재 죄와 미래 죄를 용서하여주신 것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 형제와 자매들의 잘못들을 관용의 마음으로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현대인들은 흔히 관용의 마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자기를 짜려본다고 시비를 걸어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국 젊은 부부들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세 쌍의 한 쌍 정도가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참을성이 없음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목회자가 자기에게 말한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고 하여 자기의 직분을 버리며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교회에서 되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교회를 떠나는 결정도 쉽게 내립니다.
우리에게 요셉이 가졌던 관용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용서하고, 그를 육체적으로 미혹했던 보디발의 아내를 용서하고, 옥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하여주었지만 그가 옥에서 풀려나자 요셉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그를 향하여 원망을 발하지 아니하며, 흠 없고 티 없는 삶을 살았지만 십여 년 동안 어려운 형편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을 발하지 아니한 요셉의 관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말이 많고, 인색하고, 남을 용납하기를 잘 못하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3절에서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고하는데, 바울의 권고대로 보다 넓은 마음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느긋하고 관용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을 바라보며 붙잡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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