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함이라” (살전 3:1-5)
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헌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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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좀더 평안한 삶, 물질적 축복 받는 삶을 살기 위하여서 그리 한다고 할 것이지만, 교회생활을 조금 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들의 바람이 약간 잘못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믿음의 비례에 따라서 세상축복과 평안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오히려 더 큰 환난이 임할 수 있음을 말씀하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가장 좋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예수님의 으뜸 제자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 달려 죽임을 당했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였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목베임을 당하였고, 바울은 콜로새움에서 목베임을 당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그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축복이 아니라 환난의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환난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정하여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 또는 섭리라고까지 말씀합니다. 해서, 환난은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데, 환난이 있을 때 믿음의 강하고 약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이 때에 그의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비가 온 후에 땅이 더욱 굳어진다’는 격언이 있듯이 환난을 겪고 난 다음의 믿음은 더욱 다져질 수 있습니다.
2세기 초 안디옥 교회의 주교를 지낸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그의 노년에 10명의 로마 병사에 이끌려 원형경기장의 사나운 맹수들에게 던져졌습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의 주교였지만 붙잡혀 로마로 끌려가면서 인근의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하면서 환난 중에 인내함으로 믿음의 승리자가 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이르기를, “나를 불로 지지고 쇠뭉치로 때려 보시오. 사납고 힘센 맹수를 보내시오. 내 뼈를 자르고 비트시오. 내 사지를 꺽고 내 몸을 부숴 보시오. 악마같이 잔인한 고문으로 공격해 보시오. 오히려 그것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이르게 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가 당한 환난으로 환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여 환난 중에 그들의 믿음이 요동하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외적 환난은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혹시라도 외적 환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내적 환난이 있을 때 이를 온전히 극복하고 그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온전히 알곡 크리스천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
1절: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데살로니가 지방에서 바울의 복음 전함으로 인하여 소요가 났을 때 바울의 안위를 걱정한 사람들은 바울을 호송하여 아덴까지 인도합니다. 그때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데살로니가에 있었는데, 바울은 그들을 염려하여 그들도 속히 아덴으로 데리고 올 것을 당부합니다. 해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아덴에 함께 얼마동안 있었는데, 데살로니가로부터 전하여지는 소문이 좋지 않음에 그곳 성도들이 과연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지 궁금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차에,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아덴에 머물다가 실라는 또 어떤 일로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후에, 사도행전 18장 5절에 기록된 대로, 실라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와 빌립보가 속해 있는 마게도냐 지방에서 내려와 바울에게 그곳 형편을 알립니다.
2-3절: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디모데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보냄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라고 했고, 빌립보서 2장 19절에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바람은”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동역자요, 비서요, 형제요, 아들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로마서 16장 21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고,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서는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했으며, 빌립보서 2장 22절에서는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군”(συνεργός τού θεού)은 “하나님의 동역자”로고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역인 복음증거를 하나님과 함께 감당하는 일군이란 뜻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내는 까닭은 첫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믿음에서 굳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로하여 환난 중에도 믿음을 견고케 하고 강하게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함입니다.
여기 “여러 환난”이란 동족들로 인한 환난(2:14)과 유대인들로 인한 환난, 그리고 로마로 정부로부터 받는 환난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로 이것(=환난)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당하도록 세워졌다고 합니다.
영어성경(RSV)은 이를 “You yourselves know that
this is to be our lot.”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인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또는 섭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7절에서 “우리가 그(=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할 때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우리에게 이미 승리가 약속되어진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4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바울과 그 일행이 아직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있을 때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임할 환난에 대하여 미리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미리 말한 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환난이 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에 보면, 바울이 바나바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 지방을 전도할 때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만사형통(萬事亨通)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믿음의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세상과 원수가 되어야 하며 세상사람들의 삶의 습관하고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살 때 우리가 장차 누릴 영광의 삶이 어떤 것인 줄 우리가 알기에 우리는 이것을 능히 견디고자 합니다.
5절: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나도 참다 못하여”라고 함은 1절의 반복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 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간절히 알기를 원함의 표시입니다.
해서, 디모데를 보내었습니다.
“시험하는 자”라고 함은 2장 18절에 “사단”이라고 표현한 성도들의 믿음을 뒤흔들어 넘어뜨리게 하는 자를 말합니다. 만일 시험하는 자가 성도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뽑아버린다면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바울의 모든 수고는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도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시험하고자 하는 사단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팀 라헤이(Tim LaHaye) 라는 분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좋은 어떤 부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달라스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부인 곁에 턱수염을 기른 젊은 청년이 앉았습니다. 기내에서 음식이 나와도 먹지를 않아 혹시 몸이 불편한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청년이 말하기를 ‘지금 금식 기도중이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그 말에 엄청난 도전을 받았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금식기도를 할 정도이니 정말 신실한 크리스천인 줄로 알고 너무도 반가워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부터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번에 부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탄교를 숭배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금식하는 이유를 말하기를 ‘기독교 지도자들이 타락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 있는 목회자들이 타락하도록 사탄교의 지도자들이 매주 화요일을 금식의 날로 선포하여 핵심멤버들이 텍사스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이 타락하도록 도와달라고 사단에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씀하고,
빌립보서 2장 15-16절에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합니다.
3
평안의 날이 계속된다고 하여 이것이 하나님을 잘 믿어온 증거요,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여 이것이 하나님을 잘 믿지 아니하여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수 있습니다. 목회자에게도, 교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다가올 수 있는데, 크리스천으로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이를 극복하여 우리의 믿음의 자세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환난 중에도 요동함이 없는" 참 믿음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요동하지 아니할 뿐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환난 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옥 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안에 거하든, 환난에 거하든, 우리의 창조주요 주님되시는 하나님께 늘 찬송과 존귀를 드리는 우리 귀한 인생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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