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1-11)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交際)나
긍휼(矜恤)이나 자비(慈悲)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充滿)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模樣)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服從)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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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년 가까이 목회하고 계신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그가 뼈저리게 느낀 두 가지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인간의 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변하기 힘든 존재가 없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습니까? 애들을 키우다 보니까,
세 살 버릇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이 죽을 때까지 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교회를
출석하면서 서리집사, 안수집사와 장로를 거치지만, 사람은 변화되지 않음을 본다고 합니다. 해서, 실망스러워
목회에서 좌절을 하기도 합니다.
그
목사님이 뼈저리게 느낀 두 번째 일은 그렇게 변화되기 어려운 인간 가운데 몇몇 변화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 사람은 불가능이야!’ 단념한 사람
가운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한 두 사람의 변화가 말씀을 증거하는 사역자들로 하여금 목회를 지탱하게 하는
‘커다란 비밀’이라고 그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인간의
변화가 힘들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자존심의
껍질을 깨뜨리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되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숙이에서 그리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2
1-3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虛榮)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성도와
성도간에 관계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교우를 위로한답시고 찾아가서는 그에게 잘못이 있어서 이런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비난쪼로 말하며 긍휼과 사랑을 베푼답시고 생색이나 내고
값싼 동정심을 베풉니다.
이는
마음을 같이함이 아니요, 뜻을 합함도 아니요 허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한
교회에 속한 성도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한 몸에 붙어있는 지체들입니다.
손이
발에 종처가 있어 약을 발라주면서 발에게 생색을 낼 수 있습니까?
욥이
열 자녀를 잃고 재산을 잃어버리고 그의 몸에는 악창이 나는 극한적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그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과 소발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찾아오지만, 그들의 말이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그의 마음에 고통을 배가시키는 것은 그들이 욥을 정죄하는 까닭이요,
욥의 입장에서 말하는 대신에 반대편에서 욥을 비난하며 그의 허물을 들추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겸손으로 욥을 대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신앙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권면을 할 때나, 사랑으로 무슨 위로의 말을 할 때나,
성령으로 무슨 교제나 긍휼과 자비(=사랑)를
위로를 할 때는, 그 대상자인 교우와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과
한 마음의--한 몸의--사람으로서 겸손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참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을 사람과 내가 마음과 뜻을 같이 하여야 할 것이요
겸손한 마음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위에 서서 말하는 대신에 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우리의
교우 돌봄은 참견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길 때에 비로소 진정한 돌봄이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회 안에서 서로 성도를 돌보는 일이 계속적으로 일어날 때, 이 일이 이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한 적이 있는 바울에게는 충만한 기쁨이 됩니다.
빌립보교인들과
믿는 사람들에게 겸손한 마음을 강조한 바울은 그 대표적인 예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찾습니다.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절과 3절에도 나오는 이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로네이마(φρόνημα)는 ‘생각하는 방식(way of thinking)’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에 맞추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뜻은 또한 더 중요하게는 ‘예수님의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시며 운행을 주관하시는 삼위(Three Persons)의 하나님중
제2위(second Person)인 성자하나님으로 일체(in
One Nature)되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위를 포기하시고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땅으로
내려오시되 하나님의 모습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7-8절: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여기에 나타난 대로, 자신을 비우는 것이고,
낮추는 것이며, 복종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하나님께 복종하신 까닭은 첫째는 인간의 하나님
섬김의 도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는 마음은 아집과 편견으로 채워진 마음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이 담겨질 수 있는 빈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고(自高)하고 교만(驕慢)하여 하나님을 모른다 부인하는 마음이 아니요 하나님을 삶 가운데 늘 인정하며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낮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불순종하는 마음이 아니라 늘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이땅에 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시되,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온전한 순종의
도(道)를 보이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 백성된 우리의 생각하고 행할 바의 본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하신 두 번째 이유는 인간 가운데 오셔서 인간을 이해하시는 삶을 사시기 위함입니다. 이해하고 위로하는
자의 본이 되는 삶을 사시기 위함입니다.
1절에 있는 대로,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성도들 간에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것인지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곧, 빈 마음과 낮은 마음과 복종하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리할
때, 인간들에게는 참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자요 하나님께는 영광으로
채워지고 높임을 받는 자가 됨을 알려주십니다.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그리스도 예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하나님께 복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꼐서는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실 뿐아니라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몸소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인바,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 12절(cf. 누가복음 14:11)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신 말씀을 응(應)하게 하심입니다.
11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사신 결과는 자신의 이름이 지극히 높임을 받고, 만물이 그 이름아래 무릎을 꿇는데서 끝나지 아니하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시인(是認)하고 고백(告白)하며, 이 낮고 겸비한 삶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꼐 영광을 돌리시게 만드셨습니다.
3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워지고 낮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는 참으로 그 진가(眞價)를 발휘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것”은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낮아지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뿐아니라,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라” 고백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이라면 이 경우에 어떻게 하실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고, 하나님과 본체시나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오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삶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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