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11, 2016

“복음(福音)에 합당한 삶” (빌립보서 1:27-30)



복음(福音)에 합당한 삶” (빌립보서 1:27-30)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合當)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1
맹자(孟子)의 진심장구 상(盡心章句 上)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맹자가 가라사대, 사람에게 있어 배우지 아니하고도 자연스럽게 어떤 일에 능숙한 것을 양능(良能: 선천능력)이라 하고, 특별히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데도 잘 아는 것은 양지(良知: 자연스럽게 잘 아는 것)라고 하느니라. 두세 살바기 어린아이가 자기의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가 없으며, 급기야 성장하여서는 자기의 형들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가 없느니라. 어버이를 친애하는 것은 인()이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의()이니,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천하 사람에게 두루 통하게 하는 것이라.“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바울은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말씀합니다.
맹자가 말씀했듯이 자녀로서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바요,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양지(良知)요 양능(良能)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순리의 마음-, 양선(良善: 배우지 않고도 선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19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지 않고도 하나님을 알만한 마음-양선(良善)의 마음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서는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동시에,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어버이인 하나님을 아는 것이 눈에 보이는 육신의 어버이를 아는 일에서 시작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눈에 보이는 육신의 어버이를 사랑함에서 시작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심장구 상(盡心章句 上)에서 맹자(孟子)의 말씀은 계속됩니다:
맹자가 가라사대, 군자(君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느니라. (도덕적으로 교양을 갖춘 사람은 세 가지의 즐거움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 세속적 부귀영화는 포함되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며, 형제들에게 별고(別故)가 없는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자기의 행실이 바르기에 위로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에 영재를 얻어 그를 가르쳐 훌륭한 인재로 만들어내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라.“ 맹자는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느니라.”                                                                                                                                       

우리 믿는 사람의 세 가지 즐거움도 대동소이(大同小異) 할 것입니다.
첫 번째 즐거움은 우리가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흐르는 세월 속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천국이 있기에 잠시의 헤어짐 뒤에 영원히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육신의 몸을 사는 동안, 육신의 부모님이 계신 동안, 어버이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즐거움은 우리의 성화의 삶 가운데 가능합니다. 윤동주 시인도 그렇게 읊고 있지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삶을 의탁할 때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주장하실 때, 우리는 또한 사람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없고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즐거움은 영재를 얻어 훌륭한 인재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사로서, 교수로서 가르쳐본 사람에게는 실감이 가는 말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바라는 소망이기도 합니다.
또한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바라는 기대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가르치는데 두 구절을 깨달아 실천하는 성도가 있다면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회자의 보람과 즐거움은 대단할 것입니다.

2
27-28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福音)에 합당(合當)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있으나 너희가 일심(一心)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憑據),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憑據)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福音)에 합당(合當)하게 생활하라.”
신약성경 중에 바울서신이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가장 분명하고 자주 언급하지만 바울의 믿음은 삶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복음에 합당한 성화의 삶을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로 표현한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한 대로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
이 부모-자식의 관계는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지 않는 한에는 항상 유지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아니하는 자는 부모의 속을 썩이는 자식과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른 삶을 사는 사람은, 육신의 부모의 말씀을 잘 따를 때 육신의 부모의 기쁨과 자랑이 되듯이, 그렇게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어 하나님께서 더욱 더 크신 상급과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구원받는 자식이 되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믿어 자식이 되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 따라 살므로써 칭찬받는 효자(孝子효녀(孝女)가 되기 위함입니다.

합당하게(ξίος)“란 말을 바울은 여러 번 사용합니다. 도리(道理)에 맞게란 뜻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부름에 합당(合當)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容納)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했고, 골로새서 1장 10절에서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했고,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12절에서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榮光)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은 어떤 것인가 하면,
첫째는,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든지 아니면 떨어져 있든지 상관없이 그들이 일심으로(ν ν πνεύματι) 서며, 둘째는 한 뜻으로(μι ψυχ)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 (, 같이 싸우는 것)입니다.
일심으로(ν ν πνεύματι)”의 원어는한 영으로란 뜻인데, ()은 사람의 깊은 데 있는 생각과 마음을 표현합니다. “한 뜻으로(μι ψυχ) 한 혼으로란 뜻인데 혼()은 사람의 얕은데 있는 것으로서 지정의(知情意)를 주장합니다.
주위에 그들을 넘어뜨리고자 하는 악의 세력과 맞설 때, 믿는 사람들은 첫째는 주님 안에서 한 영으로 바로 설 것이며, 두 번째는 한 혼-, 한 뜻으로 그들의 생명을 내놓을 각오로 얻은 이 복음의 신앙--믿음을 위해서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는 일입니다. “협력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순아슬레오(συναθλέω)같이 일하다(work together)라는 뜻이 있지만, 같이 싸우다(fight together)란 뜻도 있습니다.
귀한 복음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악의 세력과 싸울 때 혼자 대적하면 넘어지기 쉬우나, 한 영과 한 혼으로 성도들이 연합하여서 대항할 때는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 가운데 악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솟습니다.
세 번째는, 이미 두 번째 권고에서 힌트를 얻었듯이,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세입니다. 사단의 세력과 환경이라는 적과 싸울 때 승리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마음입니다.

극심한 핍박이나 환난이라는 환경도 우리의 적이 되지만, 때로는 내가 떠나기 싫고 떨쳐버리기 싫은 극도의 평안이라는 환경도 나의 적이 됩니다.
대적과 싸울 때 그 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이미 반 이상은 그 영적인 싸움에서 진 상태입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실 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 바울은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말씀합니다. 믿는 사람에게 외부의 적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마음 속으로부터 오는 내부의 적인두려움인데,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의 약함을 바라보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 대신에 주님을 바라봄으로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소유하고, 성도들끼리 한 영으로  굳게 서고, 한 혼으로 협력함으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 어리석은 일로 보일 것이나 그들은 이 일로 인하여서 멸망의 자식들이 될 것이고, 해서 후에 이것이 멸망의 증거임을 알게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현재 한 마음으로 굳게 서고 한 뜻으로 협력한 사람은 이러한 일이 구원의 빙거인 것을 조만간 알게 됩니다.

29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믿는다는 것이 소극적(消極的)인 행동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적극적인 행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와 고난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잘 견딤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7절에서자녀이면 또한 후사(後嗣)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後嗣)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苦難)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말씀합니다.
고난을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도 원망대신에 하나님께 감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자주(紫紬)장사 루디아와 그 가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옥중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에 옥에 있던 다른 죄수들도 이를 듣고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됩니다.
이때 지진이 나고 옥문이 다 열렸으나 바울은 도망하는 대신에 옥을 지키던 간수에게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전 16:31)고 복음을 전하고 간수는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함에 이릅니다. 바울과 실라가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림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요 이로써 그리스도가 주위 사람들에게 더 널리 전파되어진 것입니다.

30절: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군사였습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적과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기도 하고,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음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지만 중단없이 계속하였습니다.
그가 빌립보 교인들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권면할 때, 그러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싸우는 싸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우리의 무기는 칼과 총이 아니요,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바울은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冕旒冠)이 예비되어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말씀합니다.

3
한 영()으로 굳게 서서 한 혼()으로 서로 협력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심의 마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움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 믿음에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 앞에 닥치는 고난 가운데도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께 감사함으로 이 고난을 온전히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바울 앞에 예비되었던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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