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4, 2016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에베소서 6:21-24)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에베소서 6:21-24)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미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1
나이가 들어도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사는 비결은 자신에 대해서 늙었다고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92장 14-15절에서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고 하며 나이듦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함에 장애요인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 나이듦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포기하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는 67세의 나이에 평화봉사단 자원자를 뽑는 TV 광고를 보고 자원하여 인도에서 2년간 봉사를 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카터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재능(才能)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카터는 대통령으로서는 그렇게 큰 빛을 발하지 못하였지만 크리스천으로서는 귀감(龜鑑)이 될 만 합니다.
카터가 생에 대한 강력한 도전정신을 갖고 활동하는 비결은 철저한 기독교정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독실한 침례교 신자인 카터는 청년기인 해군장교 시절부터 주일성경학교 교사를 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가끔 성경을 가르쳤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그의 모교회인 조지아주 플레인스 마을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주일마다 성경학교 교사의 직무를 계속해 나갑니다.
그는 “믿음은 나를 활력있게 만드는 최대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유능하고 수완이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더욱 중요한 일은 성실하고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에베소서 전반에 걸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역설(力說)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이전부터 한 비밀의 경륜-인간구원계획을 갖고 계셨는데 그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전에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들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 간에 화목을 이루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게 하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능히 대적하여 승리(勝利)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 혹은 가택연금의 상태에서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와 골로새 교회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편지할 때 그의 세 통의 편지들을 두기고 편에 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사역이 굶주림과 매맞음과 갇힘과 죽음의 위협의 연속이었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바울에게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힘을 얻을 수 있음은 그 주위에 그를 돕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기고도 바울 주위에서 말없이 수고함으로 바울을 도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보니 “아시아 사람 두기고”라 표현되어 있는데 그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거의 마무리 짓고 고난이 기다리고있음이 예상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마게도냐에서 소아시아로 향할 때 바울을 동행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이외에 디도서와 디모데후서에도 그의 이름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그는 주로 바울의 말이나 편지 심부름을 맡아 했던 사람인 듯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2절에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했고, 디도서 3장 12절에는 그레데 섬에서 목회를 하고있는 디도를 권면하기 위하여 편지를 보낼 때에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고 했습니다.
편지 한 통이나 두 통을 전하기 위하여 먼 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함이 그리 즐겁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 같지 않습니다.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인데 나를 시킴이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기고는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이 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전달된 바울의 서신들이 정경(正經) 속에 포함되고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읽히게되는 귀중한 일을 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고 잘 대해주는 일은 사소하고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요 주님을 정성스럽게 잘 위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이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 영접함이 아니요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함이라는 뜻입니다.
 
옥합을 깨뜨리고 나드향유로 예수님을 씻긴 여인에 대하여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생색을 내거나 알려지기 위해서 할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수고와 봉사를 기뻐하십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서신을 전달하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우편배달부의 일을 잘 감당함으로 바울뿐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칭찬과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작은 것처럼 보이는 일에 충성하고 열심을 보일 때 우리가 감당한 그 작은 일은 더 이상 작은 일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우리의 충성과 열심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귀한 일로 여겨집니다.
 
21-22절: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바울은 비록 지금 몸은 로마의 한 곳에 부자유스런 상태에 있지만 영으로 사도행전 19장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그가 소아시아 지방 전도여행시에 개척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과 교통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그의 현재 사정과 형편을 그들에게 전하고 그들이 바울을 위해서 기도해주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두기고에 대해서 소개할 때 “사랑을 받은 형제”라고 시작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두기고는 생색이 나지 않는 사소한 일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주위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음은 당연하고 합당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분들의 수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입니다.
사소한 일을 감당할 때 기쁨으로 했을 뿐아니라 맡은 일을 성실하게 끝까지 한결같음으로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 길을 여행함과 같이 장기간이 요구되는 일-해서, 때로는 마음이 변하여서 중도에 포기할 수 있는 일은 늘상 그의 몫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교인에게 교회 일을 부탁할 때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항상 일을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처리하여 안심하고 맡길 수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한다고 맡았다가도 중간에 마음을 변경하여 일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안놓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반복하여서 권면하지만 교회 일을 함에 자신의 일보다도 더 귀히 여기시고 성실함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두기고는 또 어떤 사람인가 하면 바울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사정을 잘 전하여 에베소 성도들로 알게 할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사정과 말을 전할 때 임의로 덧붙여서 전하거나 악의(惡意)로 전하여서 교인들 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거나 분쟁꺼리가 되게 합니다.
좋은 뜻의 말은 빼버리고 악의가 가득한 말을 전함으로써 교회 안에 불화를 조성합니다.
바울이 “우리 사정을 알게 한다”고 말함은 여러 가지 장애요인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고 있는가를 에베소 성도들에게 알게 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짐은 보통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한 두 사람이 앞뒤는 생각하지 않고 떠들어댄 다른 교인에 대한 험담으로 비롯됩니다. 목사로서 당부하기는, 다른 사람에 대한 좋지않은 면을 들춰내거나 퍼뜨리는 것은 삼가고 무슨 위로가 될 일이나 칭찬이 될 일들에 대해서는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두기고는 “에베소 성도들을 위로(慰勞)하게 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6-8절에 나열한 성령의 은사 가운데 권위(勸慰)하는 은사가 있는데, 두기고는 이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이었던 것같습니다.
권위하는 은사란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로 그와 대화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또 기쁨과 소망을 아울러 줍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은사를 받는 교우님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23-24절은 편지를 맺는 축복의 인사말입니다.

23절: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평안(=화평)과 사랑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랑을 언급함에 바울은 “믿음을 겸한 사랑(ἀγάπη μετὰ πίστεως)”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음을 통하여서만 느낄 수 있으며 이 사랑을 나누어줌도 믿음을 통하여서 주님의 구속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믿음이 동전의 한면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동전의 또 다른 면입니다.
믿음이 우리 크리스천의 내적인 상태라고 한다면 사랑은 믿음의 외적 표현입니다.
형제·자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아직도 하나님의 대속(代贖)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우리의 사랑이 어떠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한 번 사랑하는 감정을 품었다가 마는, 또는 일정한 기간만 뜨겁게 사랑하다가 식어지는 그러한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나의 세상에서의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나의 기도가 나의 바람대로 응답되든지 아니 되든지,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에 감격하여 이 세상 살동안에 변함없이 한결같음으로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끔 그 사람이 없으면 죽고 못살 듯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원수처럼 돌아서고 서로 욕하고 미워하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이것은 아직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면, 그 표현이 눈에 보이는 주위사람들의 허물과 약함을 보더라도 변함없이 사랑함으로 나타날 터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변덕스럽고 모자라는 사랑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3
우리 교회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두기고와 같이 주위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형제와 자매되기를 바라고, 진실한 일군이요 위로받을 자를 위로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과 믿음과 함께 하는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 우리 교회가 평안하고 사랑의 표현이 넘치는 교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위에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식을 줄 모르며 기쁨과 감사의 말을 나눔으로써 한결같고 변함없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2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0-20)
 
 
  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세상에 악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터인데 악한 마귀의 세력이 현재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고 공중 권세까지 잡고 있으므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악의 세력에 미혹을 당하고 싸움을 하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악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정경에는 자세하고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창세기 3장의 옛뱀이 이브를 미혹하는 사건은 이미 악의 세력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만들어주신 에덴동산에까지 침투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경서 에녹1서(1-36장)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의 대천사("Archangels") 세미아즈(Semyaz)와 아자젤(Azazel) 지휘하에 하늘나라의 200명의 파수천사("Watchers")가 하늘로부터 지상을 내려보니 사람의 딸들인 여자가 아름다우매, 하나님의 전을 무단으로 이탈(離脫)하여 땅으로 내려와 그들과 결혼하고 그들에게 화장하는 법을, 남자들에게는 전쟁하는 법을 가르침으로 악의 근원이 땅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 집단이탈한 천사들을 직접적으로 처벌하는 대신에 창세기 6장에 간략하게 기록된 대로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제한시키십니다. 에녹1서는 이것이 악한 천사가 지상(地上)과 공중(空中)을 다스리는 시초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더 잘 아는 사탄에 관한 얘기는 악한 천사가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한 것에 대한 다른 설명으로서 또 다른 위경서인 에녹2서에 나옵니다. 하늘의 대천사인 루시퍼(Lucifer)라고도 하는 사탄나일(Satanail)이 자기 밑에 천사들을 모으고 하나님께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여지없이 패하여 하나님의 궁전에서 추방당하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공중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감사하거나 만족하지않고 창세기 3장에 기록한 대로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미혹함으로 옛뱀은 배로 기어다니고 흙을 먹는 처벌을 받으나 그리스도께서 토지무를 자로 오시기까지 지상을 다스리는 권한도 차지하게 됩니다. 그뿐아니라 지상을 다스리면서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적 전쟁은 끝나고 사탄의 세력은 밑바닥이 끝이 없는 무저갱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이르기 전까지 쉬임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2
10-11절: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 세상을 살 때 우리는 강건하여질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이 세상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갖가지의 싸움이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의 세력을 얻기 위한 싸움, 나라와 나라 간의 싸움, 승진을 위한 싸움, 형제 간에 재산상속으로 인한 싸움, 자기 자신과의 정신적 싸움, 마귀와의 영적 싸움...
그러나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이중에 특별히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위하여 우리가 강건하여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체적 강건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강건하여져야 합니다.
사람의 영은 마귀의 영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약합니다. 우리의 영이 강건하여지기 위해서는 지원군이 필요한데 그 지원군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귀와 싸우되 전신을 갑주(甲冑)로 무장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몸에 한 곳도 허술한 곳이 없어 마귀가 감히 침투할 수 없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들의 근본적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혈과 육-곧 피와 살은 사람을 뜻하는데 우리의 씨름은 사람을 대항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싸움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는 악의 역사와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싸움은 정사(the Principalities)와 권세(the Powers)와 세상 주관자들(the World Rulers of this Present Darkness)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the Spiritual Hosts of Wickedness in the Heavenly Places)에 대항하는 싸움입니다.
정사와 권세,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모두 악한 천사들-곧 마귀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정사와 권세는 일반적으로 천사를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우리가 대항하여 싸울 악의 천사-세력입니다.
에베소서 1장 2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는 우리 믿는 사람으로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위에 있게 하심입니다. 3장 10절에서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政事)와 권세(權勢)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12장 31절과 14장 30절에서 악의 세력-이 세상 주관자들을 “이 세상 임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바울은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표현합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하늘은 “공중”을 의미하는 말로서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단의 세력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한 위경적(僞經的)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1절의 반복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몸 전체를 하나님의 갑주로 무장하여 어떠한 틈새도 보이지 않고 사단의 악의 세력을 능히 대적하여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이 일이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4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허리띠를 띤다(혹은 동인다)”는 것은 싸움에 임하는 사람의 임전태세, 곧 결단을 의미합니다. 싸움에 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진리로-진실한 생각과 마음과 행동으로--악의 세력과의 싸움에 임할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함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생명과 직결된 가슴을 “의”로 보호하라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의”로서 우리의 가슴을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 여기심을 받는 길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이사야 59장 17절에서는 “의로 호심경(護心鏡; breastplate)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vengeance)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했는데, 호심경(breastplate)이나 흉배는 같은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서는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말씀함으로 “믿음과 사랑”이 우리의 심장을 보호하는 흉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15절: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함은 우리의 방어영역을 넓히고자 함입니다.
평안의 복음이라고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평안의 사도로 오시고 증거하고자 하신 좋은 소식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2장 17-18절에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전하신 그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신을 신어야 합니다.
악의 영역은 분열과 싸움인데 이곳에 평안과 화목의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대하여야 합니다.
 
16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火箭; flaming darts)을 소멸하고 

바울당시의 병사들의 방패를 보면 몸 전체를 가릴만큼 커다란 것입니다. 적이 화살로 공격할 때 큰 방패 속에 몸을 숨기면 안전합니다. 화전이란 불을 붙인 화살이나 창 촉을 뜻하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전신을 무장할 때 적의 격렬한 공격을 온전히 막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앞에서 본 바대로 이사야서 59장 17절에서도 같은 표현-“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을 썼습니다. 머리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곳인데 구원의 확신이 우리 가운데 있음으로 우리의 생명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서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라고 했는데 같은 뜻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진리나 의나 복음이나 믿음이나 구원이 방어용이라고 한다면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은 공격용 무기입니다. 이로써 사탄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십일 금식 후에 사단의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온전히 물리치신 것 같이 우리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둠으로써 사단의 공격을 파할 것입니다.
히브리서기자는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합니다.
현재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여러분의 입술에 가지시기 바랍니다.
 
18-20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의 무장은 어떤 특정할 때만 할 사안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철저하게 무장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의 연약한 때에 연약한 틈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를 넘어뜨릴 것입니다.
우리의 무장은 주님께로 향한 기도와 간구로 이루어지는데 무시(無時)로-시간을 가리지 않고 항상 성령 안에서 깨어서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했습니다. 이 일을 함은 사단이 넘어뜨리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와 교회를 구성하고있는 성도들과 나 자신을 위하는 일입니다.
 
사탄은 어둠의 영역이 침범당함을 싫어하는데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빛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담대히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묶인 상태에서도 이 일을 감당하고자 글로써 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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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매일의 삶 가운데 힘써서 항상 구할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기를 구하되 기도와 간구로써 그리스도의 영-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서 구하되, 이렇게 함이 우리자신을 위하는 일일뿐 아니라 다른 교우들을 위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위하는 일임을 깨달아 아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