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교회의 과실(果實)” (빌립보서 4:14-23)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膳物)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果實)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榮光)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 명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恩惠)가 너희 심령(心靈)에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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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미신적(迷信的)인 마음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꽤 됩니다.
교회를 빠지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을 것같아, 혹은 벌을 주실 것같아 교회출석은 하지만 생각은 다른 데 가있습니다. 예배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서 빠듯하게 다른 약속을 해놓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오늘은 모든 예배의 순서가 예정대로 혹은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따라 장로님의 기도가 여느 때보다 긴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오늘은 왜 이렇게 긴지 예정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아직 안끝납니다.
“아니 도대체 왜 쓸데없게 저렇게 길게 하는 거야?” 마음 속이 부글부글 합니다.
헌금시간도 긴 것같고, 찬송도 오늘은 왜 4절까지 있는 찬송을 하는지 모든 것이 불만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자리를 뜨지도 못합니다. 첫째는 체면 때문이요, 둘째는 예배를 마치지 않고 예배실을 빠져나오면 하나님께서 벌주실 것같아 끝까지 투덜거리면서 앉아있다가 축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빠져나와 약속장소로 달려갑니다. 이런 모양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마음에 경건한 예배드림이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하나님께 나의 중심을 드리는 것인데, 이 사람을 하나님이 기쁘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과 만나는 약속장소에 하나님보다 늦게 나오고 또, 떠날 때도 “하나님, 저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갑니다” 하고 사라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하루에 두 여자와, 혹은 두 남자와 데이트를 정해놓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주일에는, 정 급한 일이 아니면, 하나님을 만나는 약속이외에 다른 약속은 정하지 않는 것이 신앙을 성장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식사하기 전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기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를 눈에 보이게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할 때 마다 호두를 하나씩 큰 병에 넣기로 정하였습니다. 얼마쯤 세월이 지나자 호두를 담은 큰 병이 몇 개로 늘어났습니다. 해서, 이 사람의 마음이 뿌듯하여지는 한편, 신앙의 교만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날 이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물으십니다: “호두알로 가득찬 병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사람은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아, 예, 제가 주님께 드린 기도들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망치를 가져다가 그 호두알들을 깨어보아라.” 그 사람이 망치로 호두를 깨어보니, 알멩이는 하나도 없이 모두 텅빈 것들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기도는 바로 이 텅빈 호두와 같다. 매일 서너번씩 기도는 드렸지만 믿음의 기도는 드린 적이 없고 마음은 항상 다른 데 가있었지.”
우리의 교회출석이나 다른 신앙의 행위도 이와같을 것입니다.
기도를 안 드리는 사람보다 기도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10년을 기도생활을 하더라도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않은 사람은 자라지 않는 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보다 교회를 출석함이 좋을 듯보이지만, 10년을 교회출석하여도 믿음의 마음은 접어두고 형식에 치우친 종교행위를 한들 거기에는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과실(果實)을 맺는 교회가 되는 길은 간단한 일의 실천에서부터 가능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의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내가 없으면 예배가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예배준비에 더욱 정성을 쏟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각 예배순서마다 적극 참여하셔야 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도 마음을 다하여서 주님을 찬양하시고, 공동기도시간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교회 기관을 위해서, 교우님들을 위해서, 전도대상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설교말씀을 들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고 나로 깨닫기를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 귀기울이셔야 합니다. 이러한 정성을 다하는 성도님들이 모인 교회를 주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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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하는 장소인지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주님의 복음증거와 인간구원을 위한 장소이요,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제(救濟)하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교우간에 친목과 사귐도 중요한 것이지만, 이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고 했는데, 바울의 괴로움이란 그가 복음증거할 때에 당한 여러 가지 고난입니다. 헐벗음과 매맞음과 옥에 갇힘과 기타 여러 가지의 반대에 부딪힌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당할 때 바울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성령께서 그를 도우셨기 때문이지만, 두 번째로는 이 빌립보 교회가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물질로 돕고, 그와 함께 괴로움을 나눈 까닭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가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15-16절: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에 마게도냐를 떠나 남부 아가야로 갈 때에 바울의 선교비를 지원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외에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다른 곳 데살로니가에서 목회를 할 때에도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사역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부자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건물이 있던 교회가 아니라 이 교인 저 교인의 집을 돌며 모이던 가정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일을 함에는 전력으로 열심이었던 교회입니다. 이 얼마나 보기좋은 교회의 모습입니까? 바울은 나머지 선교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다른 교회들에 손을 내미는 대신에 스스로 노동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또, 데살로니가후서 3장 7-8절에서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말씀합니다.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의 물질을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받음은 그들은 마음 중심에서 바울을 돕고 바울의 선교사역에 동참하여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칭찬함은 선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랑과 구제의 정신입니다.
17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果實)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씀하고자 함은 선물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나타나게될 유익함, 곧 과실의 번성함에 대해서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외식적이고 자랑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사랑으로서 해야 하며, 이리할 때 그 일이 덕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성도의 과실을 맺는 삶은 모양과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중심에 달려있습니다.
성도의 구할 바가 과실을 맺는 일인만큼 우리는 마음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데, 이는 주위의 작은 자와 어려움에 처한 자를 진정으로 돕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모든 것이 있다고 함은 풍요하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와 함께 있으므로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쫓기는 가운데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고 한 고백과 상통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조할 것이 없습니다.
바울이 “또 풍부하다” 한 것은 그 주위에 그를 돕고자 하는 귀한 마음을 그가 본 까닭입니다.
이러한 빌립보 교인들의 귀한 선물은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만 풍부함을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마련해준 사람의 삶 가운데도 풍성함이 넘치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구제(救濟)의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길은 입술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의 삶 가운데 주위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뜻은 남을 구제할 때에 이렇게 구제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해서, 이러한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제를 베푼 사람에게 더욱 크신 축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삶을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시절(時節)을 좇아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쓸 것을 채워주심이 어떠한 방법으로 임할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21-23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바울은 21-23절에서 문안의 인사로 편지를 맺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속한 성도로서 우리의 마땅히 할 바 가운데 하나가 또 이와같은 문안(問安)입니다.
이는 그 상대에 대한 기억이며 그를 위한 기도이며 관심입니다.
여기 문안하는 사람 중에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고 했습니다.
1장 13절에서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는 아마 바울에 옥에 갇힌 중에 혹은 연금상태에 있는 중에 결실한 전도의 열매인 것 같습니다.
3
빌립보서를 통하여서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 알려줍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을 가진 교회도 아니요, 교인들이 많이 모인 교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교회건물이나 숫자와 상관없이 교인 전체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기도 중에 기억하는 교회이요, 기억할 뿐아니라 이 일을 위해서 힘써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실천하되 형식과 자랑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이 가진 바를 나누어주고자 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드리는 제사와 향기로운 제물을 기뻐받으십니다.
제사와 제물이란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니요, 괴로움과 곤궁 가운데 빠져있는 주위사람을 돕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리할 때, 그 교회는 과실(果實)을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성도의 삶의 변화를 위한 12 가지 실천사항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둘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셋째는 자신을 죄악된 길에서 돌이킨다; 넷째는 잃어버린 친구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한다; 다섯째는 성경의 약속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여섯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일곱째는 친구와 친지들을 교회로 데리고 나온다; 여덟째는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한다; 아홉째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드린다; 열째는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기쁨을 전한다; 열한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 그리고 교회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열두번째는 자기 자신이 바로 교회 부흥의 열쇠가 됨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변화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실천하기를 바라며, 이러한 성도들이 모인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 가운데 풍성하고 향기로운 과실(果實)을 많이 맺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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