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밀과 경륜” (에베소서 1:7-14)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經綸)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기업(企業)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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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의 대표적 신앙고백서인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교리문답서 제 1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praise God/glory God)"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진 우리들의 찬송은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갖고, 다 얻었기 때문에 드리는 찬송은 아닙니다. 부족한 나를 받으시고,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심이 감사하여서입니다.
시편에는 많은 찬송시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특히 107편부터 150편까지 시편의 제오권은 감사와 찬송의 시들의 묶음입니다.
다윗을 비롯한 시편의 기자들은 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그 찬송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창조자 되시며 우리 인생들과 함께 하심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양합니다.
시편 108편 3-4절에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50편 1-6절에서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자. 할렐루야.”
“할렐루야”라는 말은 “여호와를 찬양-노래하자”라는 뜻입니다.
1970년대에 유명한 인기작가로서 오혜령씨가 있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그는 그의 몸에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인하여 고통의 연속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위암과 임파선암 등으로 죽을 뻔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되었습니다. 한 가지 병이 치료되면 또 다른 병이 찾아옴으로 그는 그의 생을 암과 다른 희귀병들과 투쟁하면서 지냈습니다. 병과 투병하면서도 남편인 목사님과 함께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는 “평화의 집”을 경영하였습니다. 또한,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감사하는 찬양시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의 시집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 중에 한 구절입니다:
“당신이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다시 살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떤 찬송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그 삶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안 계신 죽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심령으로,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우리 인생의 의미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적으로 사단의 감방에 갇혀있던 죄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던 사단의 옥에서 나올 수 있고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세우신 까닭입니다.아담과 이브의 타락함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곧장 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눈치채지 않도록 그 계획을 실행할 때를 비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하여 인간에게 한동안 잃어버렸던 참 자유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담보(擔保)로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유함은 홀로 쫓기는 자의 제한적(制限的)인 자유가 아닙니다.우리의 자유함은 온전한 자유함인데 이는 우리의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 안에 안전히 거한 까닭입니다. 거기는 사단이 들어올 수 없으며 어떠한 세상 주관자나 권세자도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도피처는 선악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한 곳이 아니라 오직 선함만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의 죄된 피가 우리 가운데 흐르고 있어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던 자이요 해서 사단의 감옥에 갇히어 그가 부리던 대로 생활하던 자였는데, 창세전 우리 조상 아담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들되게 하기를 원하시던 하나님이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자녀의 삶에서 떠났던 우리 인간들의 죄의 삯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죄사함 받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죄의 사함을 구할 때마다 짐승의 피를 대신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도 자신이 정하신 방법대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아들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데 그냥 용서해주시면 되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죄짓는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싫어 버리시는 바되는 일이며 죄의 용서에 고통과 희생이 따름을 가르쳐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십자가에 피흘리게 하심으로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를 속량하시고’ 사단의 감방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몰래 탈옥하여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대신에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그가 감옥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란 패스(Pass)를 가슴에 달기가 싫어서 혹은 하나님께서 왜 이와같이 감방의 문을 여신 것인지 혹 이 감방 문을 나아가면 나에게 더 큰 고통이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에 그대로 문이 열린 감방에 남아있기를 고집합니다.
우리들은 영적으로 사단의 감방에 갇혀있던 죄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던 사단의 옥에서 나올 수 있고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세우신 까닭입니다.아담과 이브의 타락함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곧장 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이 눈치채지 않도록 그 계획을 실행할 때를 비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하여 인간에게 한동안 잃어버렸던 참 자유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담보(擔保)로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유함은 홀로 쫓기는 자의 제한적(制限的)인 자유가 아닙니다.우리의 자유함은 온전한 자유함인데 이는 우리의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 안에 안전히 거한 까닭입니다. 거기는 사단이 들어올 수 없으며 어떠한 세상 주관자나 권세자도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도피처는 선악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한 곳이 아니라 오직 선함만이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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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우리 조상 아담의 죄된 피가 우리 가운데 흐르고 있어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던 자이요 해서 사단의 감옥에 갇히어 그가 부리던 대로 생활하던 자였는데, 창세전 우리 조상 아담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들되게 하기를 원하시던 하나님이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자녀의 삶에서 떠났던 우리 인간들의 죄의 삯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죄사함 받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죄의 사함을 구할 때마다 짐승의 피를 대신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도 자신이 정하신 방법대로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아들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데 그냥 용서해주시면 되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죄짓는 일이 하나님께 얼마나 싫어 버리시는 바되는 일이며 죄의 용서에 고통과 희생이 따름을 가르쳐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십자가에 피흘리게 하심으로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를 속량하시고’ 사단의 감방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몰래 탈옥하여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대신에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그가 감옥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란 패스(Pass)를 가슴에 달기가 싫어서 혹은 하나님께서 왜 이와같이 감방의 문을 여신 것인지 혹 이 감방 문을 나아가면 나에게 더 큰 고통이 있는 것이나 아닌지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에 그대로 문이 열린 감방에 남아있기를 고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영원히 우리를 가두어두는 무기수의 감방에서 나오게 하시는 이 일은 세상 사람의 상식으로는 깨달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마련하여 놓으신 구원의 비밀은 세상사람의 지혜와 총명으로는 도저히 헤아려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요 납득이 가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에게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죄사함과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자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주셨다는 것입니다.해서, 하나님의 지혜(知慧)와 총명(聰明)을 받은 우리가 그 비밀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자고(自高)한 마음으로, 책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들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전히 비밀로 남아있고 불가해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자에게는 그 비밀의 뜻을 알리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경륜(經綸)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인데 여러분이 짐작하실 수 있는 대로 경제(economy)란 뜻입니다. 이 경제란 말은 인간에게도 매우 중요하지만 하나님께도 중요한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오이코니미아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계 혹은 가사의 경영,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경영, 관리 및 감독, 혹은 경영자, 감독자, 청지기의 직무”를 의미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선한 청지기, 악한 청지기의 사무 혹은 직분의 뜻입니다 (누가복음 16:1-4). 이때 청지기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인데 전문경제인(economist) 혹은 경영인(manager)이란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7절에서 바울은 “내가 내 임의로 이것(=복음을 전함)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 했는데, 여기서 복음증거자의 직분이 오이코노미아이며 성경적 경제인의 사명입니다.
10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인간구원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이 하나님의 때가 차매-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하나님의 예정된 경륜 곧 인간구원 계획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두 번째 오실 때 이 구원계획은 완성되어집니다.
과거와 현재는 아직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두 가지 세력으로 갈리어져 있습니다. 곧, 하나는 악의 세력, 사단의 세력이요, 다른 하나는 선의 세력 하나님의 세력인데, 예수님께서 두 번째 임하실 때 그는 심판자로 임하실 것이며 이때에 악의 세력은 선의 세력에 굴복할 것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고 조화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예정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비뽑기를 하여 땅을 그들 열두지파의 기업으로 나누어주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도 영적인 제비뽑기를 하시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그의 몫--곧 기업으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이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되어졌다는 뜻입니다.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벗어나고자 하더라도 광대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장중에 붙잡으시기에 그리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 백성된 자에게 있는 피동적인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 소유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 인류가 전부터 소망 중에 바라던 바인데,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기도 한데, 곧,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 되게 하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함이심입니다.
3절이하에서 12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복--곧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으심과 이를 위해서 인간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때가 차기까지 이 비밀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시다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시며 이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 구원의 복음을 알게 하심만으로는 미련한 인간이 믿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가운데 구원의 약속의 의미로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 성령으로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것이라 인을 치셨습니다. 도장을 찍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로서 성령을 그 가운데 가진 사람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된 자임을 하나님의 기업인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까닭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본문에서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6절에서,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했고, 1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고, 14절에서,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합니다.
왜 반복합니까?
이는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구원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을 살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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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됨이 여러분 가운데 믿어지십니까?
아직 믿어지지 않는 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시어 이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비밀이 깨달아 알아지고 믿어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됨, 하나님의 소유됨의 보증--증표인 성령님이 여러분 가운데 계심을 느끼십니까?
아직 성령님이 여러분 가운데 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분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강권적으로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은 그의 구원의 목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바라기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더욱 온전히 은혜와 영광의 하나님을 찬미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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