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변화시키는 여성: 루디아와 브리스길라” (행전 16:11-15; 18:1-4, 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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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말이 많다고 합니다. 여자들의 뇌 구조는 남자들보다 말을 많이 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 많은 것이 반드시 단점만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쓸 데 없는 것에 말이 많은 것은 장점이 될 수 없지만, 복음 증거에 말이 많은 것은 반드시 단점이라고 할 수 없고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 복음서에 공히 여자 혹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목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만일 남자들이 부활을 목도했다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잠잠했을 터인데,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기에 나가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 속히 전파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가르치는 일과 남자를 주관하는 일을 허락지 아니한다"(딤전 2:12)고 하여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교회를 기피함으로 교회에 남자들만 나온다고 하면 교회는 삭막할 것입니다.
봉사하는 일, 음식 만드는 일, 설거지하는 일, 성가대의 찬양 등 모든 일들을 남자가 한다면 남녀가 조화하여 봉사하는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찬양도 남녀가 어우러져 부르는 것이 음역이 넓으므로 남자들만의 중창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교회에 남-여 선교회가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을 보아도 남선교회보다는 여선교회가 활발합니다. 교회가 남성을 위한 교회와 여성을 위한 교회로 분리된다면, 장담하건대 여성들이 모인 교회들은 문제가 있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지만, 남성들로 구성된 교회는 문제가 적은 대신에 모이기도 적게 모일 것입니다.
발자크는 말하기를 "여자는 훌륭한 남편을 만드는 천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훌륭한 아내가 훌륭한 남편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유대인 랍비 마빈 토케어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착한 부부가 어쩌다 이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곧 재혼하였습니다. 그는 불운하게도 악한 여자를 만나 악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여자도 재혼을 하였습니다. 이 여자도 악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악한 새 남편은 곧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에 의하여 조종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더욱 그러합니다. 좋은 신앙의 부인이 좋은 남편을 만듭니다.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많은 여인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이 있는 착한 여인들과 믿음이 없는 악한 여인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을 숨겨준 여리고의 여인 라합,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나오미와 룻, 엘리사를 곁에서 잘 도와주고 죽은 아들을 다시 얻은 수넴 여인, 그리고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하던 이방 수로보니게의 여인 등은 믿음과 행실이 아름다운 여인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악한 여성의 대명사인 아합왕의 처 이세벨, 자신의 남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했던 욥의 아내, 딸을 시켜 세례요한의 목을 쳐서 소반에 담아오게 했던 헤로디아, 남편과 공모하여 성령을 속이려고 했던 삽비라 등의 어리석고 악한 여인들도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에는 예수님을 도운 여러 여인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밖에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 곁에 교회를 함께 섬기던 좋은 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루디아, 브리스길라, 루디아, 뵈뵈, 마리아, 유니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율리아 등 참 좋은 여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이런 여인들이 없었으면 사역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의 전적인 헌신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가져왔느지 살펴 보기로 합니다.
루디아가 믿음으로 인해 그의 가족이 믿게 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세계 선교에 크게 이바지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사도행전 16장은 세계 선교적으로 중요한 장입니다. 바울은 이전에 환상을 보게 됨으로 인해 이곳에 오게 된 것인데 기독교인이지만 유대인이기도 한 바울은 기도할 곳, 즉 회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무리의 여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16장 14절에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루디아가 바울의 입술을 통하여 전해진 복음을 들었을 때 그와 온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그로 말미암아 빌립보 교회 설립의 근간이 마련된 것입니다.
40절에 보면 "두 사람(=바울과 실라)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처럼 감옥에서 나왔을 때에도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에 먼저 찾아갔습니다.
만약 루디아가 없었다면 빌립보 교회는 그렇게 칭찬이 있는 교회가 되지 못하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 교회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루디아는 돈을 버는 만큼 제대로 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질 때도 루디아가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한 여성으로 인해 그의 가정이 예수를 믿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선교의 토대가 다져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약한 것 같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기회나 권한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고자 하면 굉장한 일을 이룰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또 한 명의 여성 브리스길라는 사도행전 18장에 등장합니다. 그의 남편의 이름은 아굴라인데 이 두 사람의 이름은 부부가 같이 신약성경에 5번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금실이 매우 좋았던 것같이 보이고 두 사람이 마음이 일치하여 주님을 위하여 그 자신들을 드리는데 열정이 있었습니다. 아굴라의 이름이 먼저 나온 경우는 한 번이고(고전 16:19), 나머지 네 번은 모두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행전 18:18, 26; 롬 16:3; 딤후 4:19).
브리스길라가 어떤 여인인가 살펴보기로 합시다:
첫째, 브리스길라는 가정과 일에 충성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브리스길라는 가정과 일에 충실한 굉장히 가정적인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아내이며 가정에 충실한 주부였을 것입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더라면 교회 일도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같이 나온 5번에서 4번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온 것으로 미루어 브리스길라의 믿음이 아굴라의 믿음을 이끌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봐서 아굴라는 브리스길라에게 좋은 협력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굴라의 관용적인 외조와 협력 없이 브리스길라가 좋은 성도가 되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도 브리스길라가 가정적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의 눈에 벗어났다면 교회의 좋은 일꾼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1절에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여성 직분자들에 대한 권면입니다. "모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 일만 아니라 가정의 일, 직장의 일 등 이 모든 일을 잘 하는 자가 좋은 일꾼이란 말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장막 깁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이 일을 하여 돈을 벌어 전도에 쓸 만큼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전도하였습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이 최고의 성도입니다. 자기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동시에 자기 일만 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라고 합니다.
둘째, 브리스길라는 교회를 잘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 교회 설립 당시 바울을 협조한 부부입니다(행전 18:1-4). 본도(Pontus)에서 나고 로마에서 살던 유대인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41-54년)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고린도에 와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에 동행하여 에베소로 갔습니다(행 18:18). 그리고 글라우디오가 죽음으로 다시 로마로 갔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편지를 보낼 때에 로마에 있었던 흔적이 로마서에 나타납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는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로마서 16장 4절에서는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한 것으로 봐서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바울을 전심으로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목회서신 저작 당시에는 에베소에 거주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9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는 말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에는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그 집은 교회였습니다. 그 집은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셋째, 브리스길라는 잘 가르치는 여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6절에 기록된 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경에 능하였던 아볼로를 데려다가 더 자세히 가르쳤습니다.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앞에 나온 것으로 봐서 브리스길라가 주로 가르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볼로는 당대에 최고의 목회자입니다. 당시에 가장 인텔리이고 가장 박식한 목회자였습니다.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는 아볼로 파가 있을 만큼 그는 힘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이만큼 아볼로는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2에는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고 합니다.
당시에 가장 헬라문화가 번성하고 상업이 발달한 도시인 고린도의 교회가 아볼로를 청빙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가 청빙할만큼 유능한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당시의 최고의 목회자를 브리스길라가 데려다가 가르쳤습니다. 그는 학식은 많았지만 영적 지식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많았지만 영적으로는 모자랐던 것입니다. 이것을 브리스길라가 보충해 준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2절에서 바울은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요할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또한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의 고린도 지방의 환경은 젊은 여성들이 지나치게 나서면 오해를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신전에는 젊은 여 사제들이 음란하고 부도덕한 일을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오해를 받지 않게 하려고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디도서 2장 3절에는 "늙은 여자로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라고 합니다. 늙은 여자는 가르치고 젊은 여자는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브리스길라는 당대 최고의 목회자를 가르쳤습니다. 브리스길라는 영적 지식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교회의 여성은 영적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풍성함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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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한 여자라, 나는 어린아이라, 나는 노인이라, 나는 병든 자라 할 수 없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루디아를 통하여 아름답고 칭찬이 있는 빌립보 교회가 시작된 것 같이, 브리스길라를 통하여 에베소 교회가 시작되고, 로마에 가정교회를 이룬 것 같이, 또한 아볼로와 같은 훌륭한 목회자가 배출된 것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할 때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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