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계에서의 경제윤리
성경에 나타난 개인의 경제윤리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각 개인은 정직하고 의로우며, 공정하고, 검소하고, 책망할 것이 없으며, 지나치게 탐욕스럽지 않고,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근면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신실해야 한다. 이러한 덕목들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서도 실천되어야 할 중요한 윤리적 원칙들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원칙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여러 경제적 관계에서 어떠한 경제윤리를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잘못된 풍조와 관습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고전 6:9–10), 육체의 일을 행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갈 5:19–21). 바울은 또한 탐욕을 우상 숭배와 연결하면서 그러한 삶을 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경고한다(엡 5: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도 세상의 가치와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도 바로 이러한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인은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 세상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합당한지를 분별해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 원칙은 개인의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고용주와 종업원, 판매자와 구매자, 채권자와 채무자 등 다른 사람들과 맺는 다양한 경제적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나 다툼이 발생했을 때 서로 소송하는 것을 피하도록 권면한다(고전 6:1–6).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7절에서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말한다. 바울의 관심은 단순히 법적인 소송 절차 자체를 금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와 경제적 이익을 끝까지 주장함으로써 서로 다투고 공동체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경계하는 데 있다. 때로는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화해와 사랑을 위하여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경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다스리고 관리하시는 활동과 그 원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가계 안에는 개인과 가정, 교회와 같은 여러 단위가 있으며, 각각의 구성원과 공동체는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원칙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각 개인과 공동체의 경제윤리도 세상의 가치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하나님의 경제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계 안에서 그의 뜻과 원칙을 일상적인 경제생활과 인간관계 속에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가정의 경제윤리
1. 남편과 아내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3–4절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3–4절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에게 먼저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하기보다 각자 자신의 의무를 먼저 다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2–23절과 25절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1–33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인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에 비유한다. 바울에 따르면, 아내는 주께 복종하듯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현대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권리만을 주장하기보다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부부관계는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다른 쪽을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책임을 다하는 관계이다.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엡 5:22–25). 또한 남편과 아내는 가정의 경제생활에서도 서로 정직하고 신실해야 하며, 소득과 지출, 저축과 투자, 부채와 재산관리와 같은 중요한 경제적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자신의 욕망과 이익만을 위하여 가정의 재산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가족 전체의 필요와 유익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현대 가정의 경제윤리는 부부가 하나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가정과 재산을 함께 책임 있게 관리하는 청지기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2. 부모와 자녀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4절에서 자녀와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바울은 골로새서 3장 20–21절에서도 자녀와 부모에게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는 인간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서로 상응한다. 에베소서 6장 1–4절과 골로새서 3장 20–21절에 나타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윤리적 의무는 바울 자신에게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 20장 12절의 계명에 근거한다(신 5:16 참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 1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하셨다. 에베소서 6장 3절 상반절의 “네가 잘되고”라는 표현은 질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하고, 하반절의 “땅에서 장수하리라”라는 표현은 양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1] 여기에서 “땅”은 “약속의 땅”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땅도 가리키며,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출애굽기 20장 12절(신 5:16)이 부모에 대한 자녀의 윤리적 의무를 말씀한다면,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4절(골 3:20–21)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윤리적 의무도 함께 다룬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위탁하신 존재이다.
현대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는 서로에 대한 권리만을 주장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의무와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올바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하고,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거나 자신의 뜻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녀는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위탁하신 존재이므로, 부모는 사랑과 인내로 자녀를 양육하고 올바른 신앙과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
경제생활에서도 부모와 자녀에게는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필요한 의식주와 교육을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동시에 자녀가 돈과 재산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녀에게 무조건 많은 것을 제공하는 것보다 근면, 절제, 저축, 나눔과 책임 있는 소비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도 부모의 희생과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성장한 후에는 필요에 따라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현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경제윤리는 서로를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존재로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위탁하신 책임을 사랑과 신실함으로 수행하는 데 기초해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경제윤리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4절 하반절–27절에서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의 윤리, 곧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한다. 교회 안에 분열과 다툼이 생길 수도 있으며, 때로는 교인들 사이의 분쟁을 법정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이 한 그리스도의 몸이며, 동일한 몸에 속한 각각의 지체라고 가르친다.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같은 몸에 속한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한다(고전 12:26). 따라서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의 성공과 기쁨을 시기해서도 안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서로 돌보고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이므로 그들 사이에 분열과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서로 사랑하고 돌보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 됨을 이루어 가야 한다.
현재의 교회 안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모두 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인들 사이에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지위, 직업과 교육 수준의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차별이나 분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인이 있다면 교회 공동체는 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해야 하며, 다른 교인이 성공하거나 복을 받을 때에는 시기하기보다 함께 기뻐해야 한다.
교회의 재정과 재산을 관리하는 데에도 이러한 경제윤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교회의 헌금과 재산은 특정한 개인이나 지도자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교회에 위탁된 것이므로 정직하고 투명하며 책임 있게 관리되어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나 재산을 늘리는 데에만 관심을 두기보다 복음 전도와 교육, 구제와 선교,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교인과 이웃을 돕는 일에도 재정을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교회에서 경제윤리는 한 몸에 속한 지체들이 서로 돌보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위탁하신 재정과 자원을 공동체와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신실하게 사용하는 데서 나타나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4–21절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사회에서 실천해야 할 윤리를 설명한다. 첫째,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한다(롬 12:14). 바울의 이러한 권면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상응한다(마 5:44). 둘째,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한다(롬 12:15). 여기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우는 자들은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서로 마음을 같이하라”고 말한다(롬 12:16a). 믿음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넷째,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라고 말한다(롬 12:16b).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친히 보여 주신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으며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빌 2:5–8). 그리스도인도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자랑하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이기보다 낮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말한다(롬 12:16c).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한다(롬 12:17; 벧전 3:9 참조). 잠언 17장 13절도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악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어긋나지만,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르고 본받는 삶이다. 일곱째,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한다(롬 12:18). 믿음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가능한 한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들과 화목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보여 주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여덟째,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한다(롬 12:19).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혜이다. 자신이 직접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아 갈등이 계속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최종적인 판단과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아홉째,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말한다(롬 12:20; 잠 25:21–22). 이것은 원수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윤리이다. 그리스도인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선을 베풀 때, 그러한 선한 행동은 악을 행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열째,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한다(롬 12:21).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는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때, 그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가계가 이 땅에서 확장되어 간다. 이러한 하나님의 가계의 확장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한다. 직장과 사업체, 시장과 지역사회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과 경제적 형편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의 신앙과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과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기쁨과 어려움에 함께하고,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경제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경제적 결정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경쟁 가운데서도 정직과 공정성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지 않으며, 갈등이 생겼을 때 악을 악으로 갚거나 보복하기보다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위탁된 재물과 자원을 통하여 필요한 도움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바울의 권면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윤리적 원칙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서 정직과 공정, 사랑과 화목, 나눔과 선행을 실천할 때,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사회에 나타나며 하나님의 가계가 확장되어 갈 수 있다.
1. 이웃과의 관계
모세의 십계명 가운데 후반부, 곧 제6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이웃과의 관계 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원리를 규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명령하셨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신약성경에서도 중요한 중심 주제가 된다(마 5:43; 22:39). 예수님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웃 사랑의 범위를 원수에게까지 확대하여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44).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거나 자신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이웃과 올바른 윤리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원리이다.
그리스도인이 판매자의 입장에 있을 때에는 정직해야 하며, 공정하고 정확한 저울이나 측정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어떤 판매자들은 단기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부정확한 저울을 사용하거나 상품의 품질이나 가격에 관한 정보를 사실과 다르게 제공하여 고객을 속이려고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구매자들이 판매자의 부정직함을 알게 되고 판매자는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잠언 11장 1절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하며, 잠언 20장 23절도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직성은 판매자에게만 요구되는 경제윤리가 아니다. 구매자도 판매자를 정직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구매자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은 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상품에 문제가 없는 데도 허위로 불만을 제기하여 환불이나 보상을 요구하거나 판매자의 실수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계약이나 약속에 따라 지불해야 할 금액을 고의로 지불하지 않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가격을 낮추려고 하는 것도 정직한 구매자의 태도가 아니다. 판매자가 구매자를 속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구매자도 판매자를 속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성경적 경제윤리는 거래의 어느 한쪽에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정직성과 공정성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시에 판매자이면서 구매자이기도 하다. 생산물 시장(product market)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노동시장(labor market)에서는 자신의 노동을 판매하는 판매자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소득을 얻고, 그렇게 얻은 소득으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며 생활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판매자의 위치에 있든 구매자의 위치에 있든 상대방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공정하게 거래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적인 정직성과 신뢰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건전한 경제적 관계를 형성한다.
3.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
신명기 24장 14–15절은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3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고용주에게 품꾼의 임금을 부당하게 미루지 말고 제때에 지급하라고 명령하셨다. 당시의 가난한 품꾼들은 하루의 품삯으로 그날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임금의 지급이 늦어지면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신명기와 레위기의 이러한 명령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제때에 지급하는 것이 고용주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경제윤리임을 보여 준다.
오늘날에도 일부 고용주들은 종업원들에게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정당한 임금의 지급을 지연함으로써 종업원들을 착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계약이나 하도급 관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계약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미 공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대금 지급을 장기간 미루거나 90일 또는 120일 후에 지급되는 어음과 같은 결제수단을 사용한다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질 수 있다.
심지어 일부 기독교 대학에서도 시간강사나 겸임교수의 보수를 늦게 지급하여 강의가 끝난 후 한 달 이상 지나서야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신명기 24장 15절과 레위기 19장 13절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노동을 제공한 사람이 그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당한 이유 없이 지급을 지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고용주가 종업원의 노동을 통하여 유익을 얻었다면 그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약속한 때에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임금과 거래대금을 공정하고 제때에 지급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고용주와 기업이 지켜야 할 중요한 성경적 경제윤리의 원칙이다.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근로자, 곧 노동의 판매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한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 7월부터 현재까지 시간당 7.25달러이지만, 일부 주와 시 및 카운티에서는 이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2009년 이후 한 번도 인상되지 않은 시간당 7.25달러의 연방 최저임금은 오늘날 젊은 비숙련 근로자들에게 과연 공정한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현재의 연방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를 받으면서 일주일에 40시간, 일 년에 52주를 일한다면 세금을 공제하기 전 연간 소득은 약 15,000달러(2천만 원 상당)이다.
시간당 7.25달러의 최저임금은 다소 낮아 보이지만, 많은 고용주들은 젊은 비숙련 근로자들에게 이 정도의 최저임금조차 지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에 정착하기 위하여 시간당 3–4달러의 낮은 임금에도 일하려는 취업 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이민 노동자들을 고용하려고 한다. 이것 역시 고용주의 또 다른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랍비 마이클 노프(Michael Knopf)는 레위기 19장 16절을 “네 이웃의 피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지 말라”(Do not profit by the blood of your fellow)라고 번역한다.[2] 많은 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의 최저임금을 포함한 정부의 가격통제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를 더 많이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웃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풍요를 그들과 기꺼이 나누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주인과 종 또는 노예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오늘날 사회의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5절과 9절에서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말한다. 또한 골로새서 3장 22절과 4장 1절에서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인종, 성별, 교육 수준, 사회적 계층 또는 민족적 배경 등의 차이로 인하여 여러 형태의 차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주인이든 종이나 노예이든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권면한다. 바울은 당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존재했던 노예제도 또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일시적인 사회적 상황이나 환경으로 보았다.[3]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선언한다. 바울은 믿음이 온 후에는 우리가 더 이상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으며(갈 3:2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갈 3:26), 따라서 이러한 구별을 넘어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한다(갈 3:2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차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4]
성경에 나타난 국가의 경제윤리
바울은 로마서 13장 1절과 6–7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말한다. 정부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그 권세를 존중해야 한다.[5] 또한 국민은 국가의 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권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수시아’(ἐξουσία, exousia)이다. 이 단어는 ‘~로부터, ~밖으로’를 뜻하는 ‘엑스’(ἐξ, ex)와 ‘존재, 실체 또는 본질’을 뜻하는 ‘우시아’(οὐσία, ousia)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권세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국가의 권세와 통치자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통치자는 권한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권한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가진다.
정부나 통치자는 자신에게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국가와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나 통치자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경제, 곧 하나님의 다스림과 관리의 원리를 실천해야 한다. 만일 통치자가 국가와 국민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국민에게 잘못을 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의 경제윤리는 개인의 삶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 그리고 다양한 경제적 관계에까지 적용된다. 경제활동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는 동시에 가정의 구성원이며, 교회의 일원이고, 사회와 국가의 시민이다. 또한 생산물 시장에서는 판매자 또는 구매자가 되고, 노동시장에서는 고용주 또는 종업원이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이러한 모든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하며, 교회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를 돌보고 존중해야 한다.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이웃을 사랑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서로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공정하게 거래해야 하며, 고용주는 종업원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정당하고 제때에 지급해야 한다. 종업원 역시 고용주에게 성실하고 신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또한 국민은 국가의 정당한 권세를 존중하고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정부와 통치자는 그 권세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공의와 공평으로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모든 관계를 관통하는 성경적 경제윤리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적 의사결정은 단순히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이 되는가?”라는 질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결정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가?”, “다른 사람에게 공정한가?”, “나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나 약점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이 결정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 그리고 국가는 서로 완전히 분리된 경제적 단위가 아니다. 모두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위탁된 재능과 시간, 노동과 소득, 재산과 경제적 기회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하는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경제윤리란 경제활동을 신앙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제적 관계와 의사결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가계가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세워지고 확장되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2] Michael Knopf, “A Biblical Case for Raising the Minimum Wage,” 『Huffington Post』 (February 18, 2014).
[3] 최건수,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오이코노미아 성경강해 시리즈 2 — 에베소서·빌립보서』 (서울: 쿰란출판사, 1999), 178–181쪽.
[4] 최건수, 『다른 복음은 없나니: 오이코노미아 성경강해 시리즈 6 — 갈라디아서』 (서울: 쿰란출판사, 2005), 196쪽.
[5] 최건수,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오이코노미아 성경강해 시리즈 1 — 로마서』 (서울: 쿰란출판사, 1999), 254–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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