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29, 2026

효율성과 형평성

효율성과 형평성

 

경제학에서의 효율성과 형평성

경제학에서 효율성(efficiency)은 자원을 최적으로 생산하고 배분하는 것과 관련된다. 생산적 효율성(productive efficiency) 또는 경제적 효율성(economic efficiency)은 주어진 양의 투입요소 또는 자원을 사용하여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때 달성된다. 다시 말하면,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분적 효율성(allocative efficiency)은 재화와 서비스가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적절하게 생산되고 배분될 때 달성된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한 사람의 후생(welfare)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후생(welfare)을 더 이상 증가시킬 수 없는 상태를 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이라고 한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일정한 조건 아래 생산적 효율성과 배분적 효율성이 모두 달성될 수 있다.

반면 형평성(equity)은 사회가 경제적 자원이나 경제활동으로부터 얻는 혜택을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형평성은 경제적 자원과 소득, 기회와 혜택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얼마나 공정하게 분배되는가를 다룬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제학에서는 형평성(equity)과 공정성(fairness)이 서로 밀접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효율성과 형평성은 항상 함께 달성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완전경쟁시장은 일정한 조건 아래 생산적 효율성과 배분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회의 형평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장경제는 어떻게 사회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까?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더 많은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누진적 조세제도를 통하여 더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담하고, 정부가 그 세수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함으로써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분배정책은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 전체의 형평성과 후생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는 상충관계(trade-off)가 발생할 수 있다. 셰인 홀(Shane Hall)이 지적하듯이, 고소득자에게 지나치게 높은 세율을 적용하면 더 열심히 일하고 소득을 얻으려는 동기(incentive)나 그에 따른 보상이 감소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노동과 생산이 감소하여 경제적 효율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1] 다시 말하면, 소득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한 정책이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주체들의 노동, 투자 또는 생산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과 형평성이 반드시 언제나 서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토르벤 앤더슨(Torben M. Andersen)과 요나스 마이봄(Jonas Maibom)은 한 국가가 기회집합(opportunity set)의 내부에 있는 경우, 즉 경제적 성과의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면서 동시에 소득분배의 측면에서도 불평등한 경우에는 경제적 성과인 효율성과 소득분배의 형평성을 동시에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한다.[2] 이러한 경우에는 적절한 제도와 정책을 통하여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소득분배도 보다 공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효율성과 형평성의 가능한 경계에 가까이 있는 경우에는 소득을 더욱 평등하거나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성과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경제정책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효율성과 형평성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목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벅(John Buck)은 “시장이 일반적으로 생산물 또는 소득을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취하는 입장으로, 이들은 일반적으로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매우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반면 시장이 생산물 또는 소득을 불공정하게 분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의 재분배를 위하여 정부가 더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하는 입장이다.”라고 설명한다.[3]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이 자원을 비교적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다고 보고 작은 정부와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일반적으로 공화당(Republicans)의 경제정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 전통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시장 자체만으로는 소득과 부의 불공평한 분배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조세와 정부정책을 통한 재분배를 포함하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일반적으로 민주당(Democrats)의 경제정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성경에서의 효율성과 형평성

1.    효율성

출애굽기 18장 13–27절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혼자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재판을 담당하는 것을 보고,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능력 있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 일을 분담하도록 조언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하기보다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책임을 나누고 무거운 짐을 함께 담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드로는 출애굽기 18장 21–22절에서 모세에게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고 조언하였다.

이드로의 조언에는 효율적인 조직과 관리의 중요한 원리가 나타나 있다. 모든 의사결정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능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 주며, 중요한 문제와 일상적인 문제를 구분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업과 권한 위임은 모세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를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책임과 권한을 맡기며, 서로 협력하여 일을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사도행전 6장 1–6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효율적인 분업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초대교회가 성장하면서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사역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여러 필요를 돌보아야 했다. 특히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빠지게 되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행 6:1).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도들이 말씀의 사역과 매일의 구제를 모두 직접 담당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열두 사도는 제자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선택하여 이 일을 맡기도록 하였다(행 6:3). 그리고 사도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하였다(행 6:4). 이렇게 함으로써 매일의 구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 일에 집중하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의 사역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방법을 보여 준다. 기도와 말씀의 사역, 그리고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는 모두 교회에 필요한 중요한 사역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소수의 사람들이 직접 담당하려고 하면 지나친 부담으로 인하여 각각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여 책임과 권한을 나누고, 각 사람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행전 6장은 분업과 책임의 위임이 세속적인 조직에서만 필요한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도 필요한 효율적인 관리의 원리임을 보여 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4–31절과 에베소서 4장 1–16절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다양한 영적 은사와 그리스도의 몸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각 구성원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다. 각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서로 협력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은사를 가지고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듯이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지체는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몸을 이룬다(고전 12:12–27). 또한 이러한 다양한 은사의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있다(엡 4:11–12).

바울 자신의 사역에서도 이러한 협력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혼자서 모든 일을 수행하려 하지 않고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였다. 그는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역을 하였고(행 13–15장), 그 후에는 실라와 함께 사역하였으며 디모데도 그의 사역에 합류하였다(행 16–17장). 고린도에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생활하며 일하고 사역하였고(행 18장), 이후의 선교여행에서도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하였다(행 20장 이하). 이처럼 바울은 서로 다른 배경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복음을 여러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혼자 담당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서로 다른 은사와 능력을 발견하고, 각 사람이 자신의 은사에 적합한 일을 담당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다양성과 통일성은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성경적인 분업과 협력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2.    형평성

형평성(equity)은 성경에서도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며, 이와 관련된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사무엘하 8장 15절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고 말한다(참조. 대상 18:14).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라고 번역한다. 여기에서 “공의”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체다카’(צְדָקָה, tsedaqah)로, 문맥에 따라 “의,” “공의,” “정의”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4] 특히 ISV(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는 이 단어를 “equity”(형평)로 번역하여,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justice and equity(정의와 형평)”를 행하였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체다카'와 현대 경제학의 형평성(equity)이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두 개념 사이에는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형평을 행하였다는 것은 통치자가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공정하고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행위는 의롭고 공의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생활에서도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경제적 혜택과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려는 노력은 성경이 강조하는 의와 공의의 원리와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시편 9장 8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공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체데크’(צֶדֶק, tsedeq)이고, “정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메샤르’(מֵישָׁר, meshar)이다. ‘메샤르’는 “정직”(uprightness), “공정성”(fairness), “형평”(equity), 또는 “평탄함”(evenness)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5] 특히 여러 영어 번역본은 시편 9장 8절의 '메샤르'를 “equity”(형평)로 번역한다.

‘체데크’와 ‘메샤르’는 완전히 동일한 단어는 아니지만 의미상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편 기자는 이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이 의로울 뿐만 아니라 공정하고 편파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의롭게 다스리시며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는 의와 형평이 함께 이루어지는 통치라고 할 수 있다.

선지자 이사야도 이사야 11장 1–5절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면서 이와 비슷한 사상을 보여 준다. 그는 메시아에 대하여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라고 말한다(사 11:4). 여기에서도 “공의”와 함께 사용된 “정직”은 메샤르 계열의 히브리어이며, 영어 번역에서는 “with equity”로 번역되기도 한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 형평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메시아의 통치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형평은 단순히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사람들을 편파적으로 대하지 않고 의롭고 공정하게 판단하며,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 10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분배에서도 공평과 형평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출애굽기 16장 18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었을 때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거둔 양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각 사람의 필요가 채워졌다. 이러한 만나의 분배는 성경에서의 형평이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동일한 양을 나누어 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필요가 충족되도록 하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나눔은 하나님의 형평이 그의 백성의 경제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신명기 15장 7–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형평은 단순히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양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족한 사람이 자신의 자원을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과 나눔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바울은 제 10장에서 살펴본 “평균의 경제”를 강조한다. 현재 자신에게 풍족한 것을 그것이 부족한 사람들과 나누고, 장차 그들에게 풍족한 것이 자신에게 부족할 때에는 그들이 그것을 다시 나눔으로써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고후 8:14).

바울이 가르치는 평균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똑같이 소유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풍족함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워 줌으로써 서로 사이의 불평등을 줄이고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나눔은 물질적인 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적인 부와 은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에게 풍족한 것을 부족한 사람과 나누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줌으로써 물질적·영적 불평등을 줄여 가는 것이 바울이 가르치는 평균의 중요한 원리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의 “평균의 경제”는 성경에서의 형평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효율성과 형평성의 상충관계

이 장의 앞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상충관계(trade-off)가 있다. 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형평성이 낮아질 수 있으며, 반대로 형평성을 높이거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효율성이 낮아질 수 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incentive)를 잃게 되면 생산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얻은 부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을 경우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incentive)가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 43–47절과 4장 32–35절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incentive)가 억제되지 않고 오히려 삶의 고귀한 목표와 목적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면 효율성과 형평성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소유를 강제로 빼앗기거나 나누도록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풍족함을 나누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나눔은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incentive)를 약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할 수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음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발적인 나눔과 이웃 사랑은 형평성을 높이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는 동기를 유지하거나 더욱 강화함으로써 효율성과 형평성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성경이 가르치는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는 현대의 자유시장경제에도 중요한 원리를 제시한다. 자유시장경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경쟁,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을 통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동기(incentive)를 제공한다. 성경은 이러한 생산적인 노동과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재능과 자원을 부지런하고 충성스럽게 활용하여 열매를 맺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경제적 효율성과 이익의 극대화만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신의 풍족함을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나누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줌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성경적 원리가 자유시장경제 안에서 실천된다면, 개인의 소유와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incentive)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불평등을 줄이는 형평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이 제시하는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는 효율성을 위하여 이웃을 외면하거나 형평성을 위하여 생산적인 동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고 그 결과로 얻은 풍족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1] Shane Hall, “Economics: Equity vs. Efficiency,” 『Bizfluent』 (September 26, 2017).

[2] Torben M. Andersen and Jonas Maibom, “The Trade-Off between Efficiency and Equity,” 『VOX』 (May 29, 2016).

[3] John Buck, “Economic Efficiency and Equity,” 『Economic Perspectives』. (February 10, 2008).

[4] Strong’s Hebrew Concordance, “6666. tsedaqah,” 『BibleHub』.

[5] 같은 자료, “4339. meshar,” 『Bible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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