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있는 자의 삶” (에베소서 5:15-21)
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注意)하여 지혜(智慧)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歲月)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放蕩)한 것이니오직 성령(聖靈)의 충만(充滿)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敬畏)함으로 피차 복종(服從)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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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처음부터 믿어지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면 좋겠지만 이역시 처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바램입니다.
그런데 제게 부딪혀오는 심각성은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처음에, 주님을 믿고싶은 마음과 보고싶은 마음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일생을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주님을 믿는다, 주님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지혜 없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바울이 공생애를 사신 예수님을 보고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경험했다고 주장한 것은 헛된 생각과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메색(Damascus)으로 가는 길에서 빛 가운데 임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까닭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무엇에 근거를 둔 믿음입니까?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기를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전도를 할 때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담대함을 주는 것은 예수님을 어떠한 형태로든지 느끼거나 체험한 후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싶은데 믿어지지 않는 걸 어떡합니까?
예수님이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확신을 갖고싶은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에 확신이 안옴을 어떻게 합니까? 목사님, 하나님을 믿고싶은 마음, 천국을 보고싶은 마음 이것이 믿음이 아닙니까?
그러나, 믿고싶어하는 마음은 믿음의 단계를 향한 시작일뿐이지 아직 믿음은 아닙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여러분에게 믿어지지 않는 주님을 믿고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주님의 임재를 느낀다고 시인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주님을 믿기를 사모하고 간구하는 마음과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노력을 주님께서 기뻐받으셔서 여러분의 생 가운데 그분을 느끼시고 체험하는 순간들이 있기를 바라며, 해서 여러분의 삶이 근본적으로 주님 안에서 거듭나고 바뀌시기를 간구합니다.
17세기초 영국을 통치하던(1603-1625)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의 즉위 초에 존 레이놀즈(John Reynolds)라고 하는 사람의 진언에 따라 왕실작가 54명에게 명하여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게 하여 8년이 지난 1611년에 현재까지도 널리 읽혀지고있는 킹제임스역(King James Version)을 세상에 내어놓았습니다.
당시 영국 내부에는 도둑이 많아 도둑질을 근절시키는 방안으로 크든 작든 도둑질하다 잡힌 사람은 모두 사형을 시켰습니다. 암스트롱(Armstrong)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염소 한 마리를 훔치다가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옥에 갇혀 사형당할 날을 기다리던 암스트롱이 교도관에게 말을 건넵니다: “나으리, 듣자하니 이번에 임금님께서 성경을 영국말로 번역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그것이 사실이지.” “교도관 나으리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이제 얼마 못살고 죽을 목숨인데, 죽기 전에 임금님께서 번역하신 성경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제 소원을 꼭 한번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임금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네.” “죽을 사람의 소원이니 꼭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도관은 상관에게 암스트롱의 말을 전하고 결국 제임스 왕에게 이 말이 전하여졌습니다.
제임스 왕은 자기가 번역하게 한 성경을 읽고싶다는 사형수가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합니다: “그것 참 기특한 일이로다. 그에게 성경을 넣어주어 읽게하고, 그가 성경을 한 번 다 읽을 때까지 사형집행을 연기하라.” 성경책을 암스트롱에게 전해주면서 교도관은 말합니다: “빨리 성경을 한 번 다 읽어라. 다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는 왕명이시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빨리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가 풀을 먹은 후에 자리에 누어 천천히 새김질을 하듯 그렇게 읽어야 하는거지요.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한 절씩만 읽기로 했습니다.”
성경책이 몇 절로 되어있습니까? 성경은 장으로는 1,189장이고, 절로는 31,202절이나 됩니다. 해서 하루에 한 절씩 읽어 성경 전체를 다 읽기 위해서는 85년 하고도 반년이 더 걸립니다.
교도관은 암스트롱의 말을 상관에게 전하고 이 말을 전해들은 제임스 왕은 큰소리로 웃고선 말합니다:
“좀 도둑치곤 대단히 지혜있는 녀석이로다. 그렇다면 성경을 감옥에서 읽을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 읽으라고 하라.” 암스트롱은 성경 때문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성경을 읽되 이젠 궂이 한 절씩 읽지 않아도 되어서 계속 읽고 또 읽어 말씀 속에서 자기의 죄와 허물을 깨달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심군식목사의 글 중에서).
2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있는 자의 삶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5-16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골로새서 4장 5절에서는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라고 함으로 지혜 있는 자는 그 행할 것을 돌아보고 주님 안에서 바른 행함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바른 행함의 한 방편으로 16절에서는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얼핏 보기에 별 연관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세월을 아끼다”고 번역된 단어의 원뜻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킹제임스역(KJV)은 이를 “redeem”(구속하다, 사다)이라 번역했고, 다른 영어성경들(RSV, NRSV, NIV)은 “make the most of the time”(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하라)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헬라어 엑사고라조(ἐξαΥοράζω)의 뜻은 “...으로부터 사다, 무르다, 놓아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사단의 종노릇하던 우리들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시간 모두가 사단에게 속하여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신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들을 주님께서 피값으로 사신 바되었는데 우리를 사단으로부터 사신 주님은 우리의 생명만 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까지 사신 바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몸은 우리의 자아와 인격과 재물과 시간 사용을 포함한 우리 전체의 삶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악한 때와 세상 가운데 여전히 사단의 기뻐하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는 권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바된 성도의 마땅히 할 일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두 번째 권면은 17절에 있습니다.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바울이 말씀하는 어리석은 자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조롱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지혜있는 자”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해하는 자”입니다.
주의 뜻(=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은 여러군데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50과 마가복음 3장 35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8장 5절에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 했고, 에베소서 6장 6절에는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17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듯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4장 2절에서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고 베드로전서 4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에게 부탁할지어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요한1서 2장 16-17절에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나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뜻은 성경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되어지는 환경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향한 나의 마음 속에서 들려지는 ‘작고 세미한 음성’을 통하여 그리고 나의 사모하는 마음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주의 뜻 알기에 감각있는 자 되시고 해서 여러분을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삶 가운데 늘 이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지혜있는 자는 여기 “술 취함”으로 표현된 것과 같이 세상 일에 너무 지나치게 탐닉(眈溺)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많은 유익한 은사가 나타나고 풍성한 열매맺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혜있는 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를 위한 바울의 네 번째 권고의 말씀은 19절에 있습니다.
19절: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도간에, 또 하나님과의 사이에 이러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의 화답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간에는 시기와 불평의 목소리가 드높은데 그 동일한 입술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한다고 하더라도 그 찬미는 주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찬송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미(讚美)하되 입술로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 중심에서 노래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바울은 감사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20절: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현재 처해있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노래하고 감사할 이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는 종일 주를 향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지혜자의 삶을 살기 위한 여섯 번째 권면의 말씀을 줍니다.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섬김과 복종의 삶의 본을 보이시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섬기시며, 하나님을 복종하되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철저히 죽으셨습니다.
21절은 남편과 아내에게 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성도 일반에게 주는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를 대하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상대방 속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대하는 자세로 피차에 복종하고 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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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까?
먼저 자신과 성도안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져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하거나 믿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 하고 주님께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구드려야 할 것입니다.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지혜자의 삶을 살되, 악한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시간을 아끼고 선용하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이해하며, 세상 것에 지나치게 탐닉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하나님을 시와 노래로 찬미하되 성도간에 먼저 아름다운 노래와 말로 교제하고 화답하며,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성도간에 서로 섬기며 복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