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다가 낙담치 말라” (살후 3:13-15)
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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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그의 도덕경(道德經)에서 선에 대하여 말합니다:
가장 최고의 선(善)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을 받는 일도 없습니다. (8장)
노자는 최고의 경지의 선(善)을 물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물과 같이 항상 낮은 자세로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겨루는 일도 없으니 나무람을 받는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노자는 또 선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요,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료(資料)입니다.
스승을 귀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나 자료(資料)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지혜롭다 자처하더라도 크게 미혹된 상태입니다. (27장)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선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에 선한 사람이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승과도 같은 선한 사람을 귀히 여김과 동시에 선하지 못한 사람을 아낄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基意) 시제불교(是諸佛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악한 일은 짓지 말고/선한 일은 받들어 실천하라/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뜻입니다.
「경덕전등록」이 전하는 이 일화는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와 도림선사(道林禪師)의 대화에서 유래한 칠불통계(七佛通戒)입니다. 칠불통계란 석가모니 이전 과거 칠불(비바시불․시기불․비사부불․구류손불․구나함모니불․가섭불․석가모니불)이 한결같이 당부한 훈계로, 곧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를 말합니다.
시인 백거이가 “어떤 것이 불법(佛法)입니까?”라고 묻자, 도림선사가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라”고 대답했습니다.
백거이가 그것은 세 살 짜리 아이도 알겠다고 빈정대듯 말하자, 도림선사가 “세 살 짜리 아이도 말할 수 있으나, 팔십 된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1703-1791)는 선을 행하는 삶에 대하여,
“Do all the good you can, by all the means you can, in all the ways you
can, in all the places you can, at all the times you can, to all the people you can, as long as ever you
can.”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모든 때에,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순간까지”)라고 권고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 것입니다.
시편 37편 1-3절에서 시편기자는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시편 37편 27-28절에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3-45절에서 예수님은 선한 열매와 악한 열매에 관하여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으로 선한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을 행할 대상은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원수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33-34절에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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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악을 행하는 사람은 낙심치 않으나 선을 행하는 사람은 낙심하게 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얻기 위하여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가 행한 악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여 낙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선을 행함을 알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잘 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없을 때, 칭찬은커녕 욕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 때 낙심하게 됩니다.
선을 행하는 일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과 또한 주위의 죽어가는 심령들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하다가 칭찬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해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낙심하고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0-12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지만, 옥 중에서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여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행전 16:22-25).
사람들에게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결여되어 있기가 쉽습니다. 어떤 믿음의 선을 행할 때 그 결과를 당장 보고 싶어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이 세상 살 동안에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선을 행하는 사람의 이 세상 삶이 평안치 못하며 오히려 환난과 역경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그마한 믿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실망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10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 혹 실망하고 피곤하여지는 것은 그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보상이 당장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 보상이 없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자기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을 행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지만 틀림없이 있으며 하나님의 보응이 더딘 것 같지만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2장 3-4절에서 “이 (심판의)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악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마음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추수의 때를 바라보는 사람은 낙심하지 아니하며 피곤하지 아니하여야 할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때는 더딘 것 같지만 반드시 이를 것이며, 하나님의 때가 믿음의 씨를 뿌리고 선을 행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상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 인생의 이 세상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시간의 과정 중에서 인생의 이 세상의 삶은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의 삶이 선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신령한 것을 심고 가꾸는 자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과 함께 칭찬과 상급을 거두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4절: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이란 앞에서 바울이 권고한 “규모 있게 행하고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라고 함은 그렇게 권고하였는데, 이 말씀을 순종치 아니할 때 그 사람을 단호하게 구별하고 멀리하라는 명령입니다.
바울이 “우리 말”이라고 한 것은 사실은 바울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설교를 들을 때, 그들이 순종하는 것은 목회자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인이 수천 명이나 되는 큰 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첫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교인 한 사람이 그 목사님에게 말합니다:
“목사님, 수고하시겠습니다. 우리 수천 명 교인의 마음을 다 맞추려면 얼마나 수고하시겠습니까?”
그 교인의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인사하던 것을 멈추고 설교단으로 다시 올라가서 교인들을 정돈시키고 엄숙하게 말을 합니다:
“저는 이 교회로 부임하여 충성으로 시무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교인들의 마음을 다 맞출 수는 없습니다. 수천 명의 교인들이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제가 이 교회에서 시무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맞춰야 한다면 사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다 목사님의 말씀(=목사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멀리하고 상대하여 주지 아니하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15절: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그러나, 이와 같이 하는 것도 그를 원수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에 그가 깨닫고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해서, 바울은 “형제같이 권하라.”고 말씀합니다.
3
선을 행하십니까?
계속 행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습니까?
알아주기는커녕 욕이나 비난을 하고 있습니까? 심한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선을 행한 사람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을 것은 때가 이르면 선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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