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살후 1:6-10)
1:6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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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에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반드시 인(因: 원인)과 연(緣: 조건)과 과(果: 결과)의 관계에 의하여 성립된다고 합니다. 먼저 원인(原因)이 있는데, 이는 어떤 조건(條件: 緣) 아래서 응분의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하여, 선한 원인(善因)으로부터 선한 과실(善果)이, 악한 원인(惡因)으로부터는 악한 과실(惡果)이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43-45절에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인과응보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못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를 가만히 두시는 것 같지만, 때가 이르매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그 때란 바로 주님의 임하심의 날입니다.
채근담(菜根譚)에 있는 말입니다.
선행을 하지만 그 이익을 보지 못함은 (爲善不見其益)
마치 수풀 속의 동아(동과: 박과에 속하는 일 년생 덩굴식물)와도 같다. (如草裡東瓜)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기 때문이다. (自應暗長)
악한 짓을 하는 데도 당장 손실을 보지 않음은 (爲惡不見其損)
뜰 앞의 봄눈과도 같다. (如庭前春雪)
반드시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當必潛消)
선행을 쌓아도 그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장합니다.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얻은 것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소멸됩니다.
믿음의 결실을 함에도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둘 것인데 믿음 생활의 열매가 당장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나무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라나며 더딘 것 같으나 반드시 열매를 맺고 결실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신령한 것과 썩을 것의 결실과 보응(報應)이 당장 눈에 보이게 나타난다면 좋을 것 같은데, 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순종의 사람이 세상에서 더욱 번창하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도 그에게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나 바울은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가 심고 가꾼 대로 거둘 때가 반드시 올 것인데 곧 우리 인생의 끝에 우리에게 임할 주님의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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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이 세상의 현상을 보면, 환난을 주는 자들이 잘 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환난 당하는 사람들은 그 환난에서 헤어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환난을 가할 때, 핍박할 때, 억울해할 것이 아니고 맞서서 싸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신원(伸寃)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대신 갚아주실 것이며, 우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 환난으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는 성도에게 가하는 환난이 하나라고 한다면, 장차 주님의 날이 이를 때에 그가 당할 환난은 열 배 이상 클 것입니다.
7절: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서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환난이나 핍박을 당할 때 오히려 기뻐할 것은 하나님나라에서 우리의 상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우리 상이 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당한 환난에 대하여 보복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나라에서 우리가 받을 상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rest) -- "평안한 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환난을 가하는 자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자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이 영원한 것 같이 그가 주시는 환난도 영원한 것임을 아는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환난을 가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공의의 심판의 때는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라고 했습니다. “불꽃(flaming fire)”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임하심을 의미합니다.
8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주님의 때에 형벌을 당할 사람들은 첫째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요, 둘째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되 복종치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요, 하나님의 존재를 듣고도 인정치 않음입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거나 인정치 않음은 그 마음이 자고(自高)하여진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전혀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몰랐습니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 만한 마음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로마서 1장 18-2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9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예수님의 복음을 듣되 거절한 자들은 주님께서 임하실 때 그의 얼굴을 감히 대면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에 가까이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종국은 영원한 멸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타는 유황불에 던져져 극한 고통 속에 놓일 것입니다.
10절: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영광의 주님께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주님의 임하심을 찬양하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소망과 기쁨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여도 인내하며 감사함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이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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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며,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며, 때로는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고 인정하여 주지 아니할 때에도 우리를 인정하시며 우리의 하나님 사랑의 작은 몸짓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환난 받을 때에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때가 더디 임하는 것 같을 때에도 오래 참음으로 소망 중에 기다리며, 공의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내어 맡기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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