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1, 2017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 (살전 2:1-8)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도” (살전 2:1-8)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奸詐)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가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1
리처드 박스터(Richard Baxter, 1615-1691)라고 하는 영국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를 때면 마치 마지막 숨을 거두려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서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건강이 나빠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함이 있기도 하였지만, 전도는 생사를 가름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스터 목사님은나는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냉담하고 태연하게 말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럽습니다. 눈물로써 설교하고 강단을 내려와서는 손을 펴서 죄인을 붙들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나는 또한 자신이 집회에서 죄인의 얼굴을 마음 속에 떠올리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태연하게 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님(D. L. Moody, 1837-1899)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묻습니다.
목사님, 성경을 읽다가 깨달아지지 않고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대부분의 목사님들은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십시오라고 하든지지금은 깨달아지지 않지만 나중에 깨달아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지만, 무디 목사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고 깨달아지지 않으면 뛰쳐나가 전도하십시오. 성경책을 놔두고 나가서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봉사하고 전도하십시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성경책을 읽으면 깨달아질 것입니다. 행하지 않고 읽기 때문에 깨달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은하루에 적어도 사람에게 전도하겠다 하나님께 약속을 드렸습니다.
어느 날은 잠자리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전도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길거리로 뛰쳐나가 마침 지역 순찰을 도는 경찰관을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전도는 해도 그만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사생결단으로 해야될 일인 것입니다.

미국 침례교 목사요 신학자였던 스트롱 목사님(A. H. Strong, 1836-1921) 전도와 선교의 중요성에 대하여전도자를 길러내지 않는다면 교회는 무엇 때문에 있는가? 그들을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교회 교육이란 무엇을 위해 있는가? 그들을 태워 운송하지 않는다면 상업이란 무엇을 위해 있는가? 그들을 파송하지 않는다면 돈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전도의 목적을 완수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자체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전도를 위하여 목숨을 사람으로 우리는 바울 사도를 먼저 생각할 있습니다.

2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가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했습니다. 그의 복음증거를 듣고 헬라인의 무리와 귀부인들이 그들을 따랐으나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키매 베뢰아로 피하여 가고 그곳에 머물다가 그곳에서도 소동이 일어나매 아가야 지방의 아덴까지 피하여 내려갑니다.
비록 유대인들의 방해가 심하여 오래 머물면서 전도한 것은 아니었지만(행전 17:1-10),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가 헛되지 않음은 이미 1장에서 설명하였듯이 실라와 디모데 편에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전해들음으로 있었습니다(1:3).
그뿐 아니라 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 일행을 본받는 자의 삶을 살고자 힘쓰고 있었습니다.

    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바울은 그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음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대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자주장사 루디아와 가정의 구원을 통하여 빌립보 지방에 복음의 열매를 맺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복음증거에 반대하는 자들의 고소로 인하여 관원들에게 붙잡힘을 당하여 옷이 찢기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소아시아 이고니온에서 전도할 때에는 유대인들에게 돌로 침을 당하여 죽음 직전까지 적도 있습니다(행전 14:19).
이와 같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항상 고난과 능욕도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은 즐거움이나 사단의 방해도 만만치 않아 성도의 복음 전하는 즐거움을 그대로 보고 있지만 않습니다.
그리할 복음 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것인가 하면 그런 반대와 고난과 능욕 중에도 복음을 전하여야 것입니다. 이는 이러한 복음 증거자의 영적 싸움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복음증거자로서 그가 당했던 고난과 능욕을 말하는 것은 지금 현재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당하는 고난과 능욕이 그들만 겪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자 함이며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바울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권면하는 것은 그저 입에 발린 소리나 무슨 부정이나 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도자가 바울은 그의 복음 전함이나 또는 성도들의 권면을 함에 있어서 사람의 뜻을 따르거나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에게 복음전도의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함을 분명히 합니다. 

갈라디아서 1 10에서 바울은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말씀함으로 그의 모든 삶은 주님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삶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살든지 전해들은 복음을 지키는 자의 삶을 살든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5: 너희가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칭찬하고 권면하는 모든 일들에서 그저 그들 듣기 좋으라고,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첨하는 말을 함이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 어떤 급부를 바라서 하는 것도 아님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이나 품은 생각을 하나님이 가장 아시는데 바울의 모든 칭찬이나 위로나 권면이 바울의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그를 가장 아시는 하나님이 증거한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6-7: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바울이 사도인 면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지만 바울이 구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존중을 얻거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자식을 사랑하는 부드러운 어머니처럼 자식에게 젖을 먹여 신앙에서 성장하게 하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 바울은 사도이지만 사도로서의 존중 또는 영광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어머니 또는 아버지로서 그의 복음의 자녀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고 성장을 위하여 그가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감당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주기를 원한 것은 복음뿐 아니라 그의 목숨까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요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한 성도들이 또한 그들의 복음 증거를 듣고 나중 믿음에 들어선 자들에게 베풀 사랑입니다.

3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예언적 명령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전도하고 다른 민족에게 선교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삶을 우리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증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투로스 (영어의 martyr)는 순교자란 뜻입니다. 전도하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자원하는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 사람들의 영혼을 더욱 사랑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비장한 각오로 다가갈 수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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