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경고” (살후 3:6-12)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 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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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여라고 하는 제자가 낮잠을 일삼자 공자가 그를 꾸짖습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하지 못하며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하지 못하니
재여를 책망한들 무엇하리요!”
해서, 공자는 말하기를,
“전에 나는 사람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는데 이제 나는 사람의 말을 듣고도 그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
이는 오직 재여의 일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도에 일하기를 싫어하여 매일 놀다가 거지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지는 다른 때와 같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는데 우연히 석가모니가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거지가 적선을 구합니다:
“나리 한 푼 보태줍쇼.”
석가모니가 그를 불쌍히 여겨 집집에서 얻은 음식을 나눠주고자 합니다.
거지는 두 손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으나 손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거지는 깜짝 놀라 우는 목소리로 외칩니다:
“나리,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이게 웬일인가요?”
석가모니는 한참동안 거지의 거동을 보고 있다가 말합니다:
“당신은 젊은 데도 불구하고 일하기 싫어서 구걸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소. 수족은 일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하지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필요치 않으니 나중에는 눈, 귀가 다 움직이지 않게되고, 결국에는 죽을 것이오.”
거지는 눈물을 흘리며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석가모니는 대답합니다:
“마음을 돌이켜 일을 하시오. 그러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오.”
거지는 이후로 열심히 일하여 부지런한 농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언젠가 늦은 밤에 밖에서 누가 벨을 눌러서 나가보았더니, 20대 초반쯤 되는 키가 크고 건장하게 보이는 흑인 청년이 서있습니다.
그는 말을 시작합니다:
“나는 덜 안전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인데, 당신은 안전한 지역에 사는 사람이니까 나를 도와줘야 되요. ...”
“무얼 어떻게 도와달라는 말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말을 이어 갑니다:
“당신 집 마즌 편에 있는 한 부인이 내게 준 수표요.”라고 하면서 30불 짜리 수표를 꺼내 보여줍니다.
“당신은 건강하게 보이는데 일을 하지 왜 이렇게 구걸하고 다닙니까? 그것도 밤이 야심한데 이러는 것은 좋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 흑인 청년은 대답합니다:
“내가 아침 10시부터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있소. 당신도 나를 도와줘야 해요.”
완전히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합니다.
“나는 당신같이 건강한 사람에게 돈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저는 시늉을 하면서, 내가 이런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니 당신은 나쁜 사람이오“라고 하며 갑니다.
옆집으로 옮겨갔는데, 옆집 사람은 아마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던지 그가 벨을 누르자 불을 꺼버립니다.
아침에 저의 아들 편에 들은 얘기로는 또 다른 집으로 옮겨다니며 자기에게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과 시비를 계속 벌였는데, 저희 아이의 친구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기를 “돈은 줄 수 없고, 일자리는 제공해줄 수 있다”고 하자, 자기가 필요한 것은 “돈이지 일자리가 아니라”며 그와도 한창 실갱이를 벌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주위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고,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불편하거나 도무지 여건이 허락지 않아 일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나 성도가 불쌍하고 헐벗은 사람을 구제할 것을 말씀하지만,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사람까지 구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구제할 것인가 누구는 구제하지 말 것인가 판단하는 것이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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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성경의 가르침은 부지런함과 근면함이지 무위도식(無爲徒食)이 아닙니다.
또한 되는 대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시간을 선용하고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17절에서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말씀합니다.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크리스천인데 되는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규모 없는 삶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오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임박하였으니, 일을 하는 것이 소용이 없다. 그저 되는 대로 지내다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자는 분위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팽배하여 교회가 어수선하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은 “항상 깨어있으라. 세월을 아끼라”고 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의 게으름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자를 경계하고 멀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7-8절: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누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바울은 그의 편지 곳곳에서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그리스도 사랑함을 본받는 자 되라는 것이며, 또한 그의 부지런함을 본받는 자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곳곳을 돌아다니면서도, 그이 생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장막을 깁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생계를 마련하는 일에도 부지런하여 좀체로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를 도와주는 빌립보 교회를 비롯하여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의 도움을 감사함으로 받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스스로 일하여 식량을 마련하였습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란 말이 있습니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독서한다는 뜻입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도 있습니다. 반딧불과 눈빛으로 책을 본 결과가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부지런함이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도 나타나져야 할 것입니다.
9절: 우리가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여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9장 3-6절에서 바울은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속하여 11-12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고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생활비 요구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처음 전하는 지역에 따라서 아직 믿음이 연약한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로서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고 부지런함으로 경영함으로 크리스천의 근면함과 부지런함의 본을 보이고자 하였습니다.
10절: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근면함과 엄격함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에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교회 일에 게으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근심시켜 드립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불평할 시간이 없지만 게으른 사람은 일하지 않는 그 시간에 불평을 하고 다닙니다.
저는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를 매우 좋아하는데, 한 달란트 맡은 자의 문제는 한 달란트밖에 맡을 수 없는 그의 능력의 작음이 아니요 그 한 달란트도 경영하지 않는 게으름이요 불평함입니다.
만일 그 종이 한 달란트를 잘 경영하여 한 달란트를 남겼다면,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과 동일한 칭찬으로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더 열심히 경영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더라면, 주인은 더욱 더 커다란 칭찬을 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1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하니
규모 없고 게으른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남이 일하는 시간에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흉이나 보고 잘못된 일을 경영하는 것입니다.
일만 만드는 자들(일만 만들다: 페리에르가조마이)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아니하고 빈둥빈둥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여 일을 벌이는 자를 뜻합니다.
바울은 게으른 젊은 과부들을 경계하면서 디모데전서 5장 13절에서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별 문제가 없을 것도 이런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일을 만들기에 교회가 소란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12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바울은 이와 같이 자기가 해야 할 일에는 게으르며, 쓸 데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일을 만드는 자들에게 경계하여 말하되, 그들은 게으르고 떠들며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자기의 양식을 먹으라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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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 것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함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잘 경영할 때, 하나님의 상급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하여 나태하지 아니할 때, 우리의 입술에, 우리의 삶에 부정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모습만이 나타날 것입니다.
게으름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의 삶에서 번성하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나타나지기를 소망합니다.